공부/革新

[손욱의 혁신 경영 이야기] 일본 기업에서 배운 ‘신뢰성’과 품질 혁신

프로처럼 2011. 11. 15. 11:49

사람이 곧 혁신이다 (18)

일본은 어떻게 세계 최고의 제조업 강국이 되었을까. 그 비밀은 품질, 즉 ‘신뢰성’에 있다. 삼성전기에 근무하던 1988년 무렵 마쓰시타의 품질관리 담당으로부터 3년 정도 지도를 받은 적이 있다. 그가 우리에게 “신뢰성이란 게 도대체 무엇이냐”고 묻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예를 들어 TV의 고장 원인은 다양하다. 다양한 원인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면 그에 맞는 대책을 세울 수 있다. 그것이 바로 마쓰시타 맨이 말한 신뢰성이었다. 마쓰시타는 TV를 처음 생산하면서 고장의 원인을 새로 알아내는 직원에게 상을 줬다. 전압·누수·먼지 등 고장의 원인은 무척 다양했다. 많은 연구원들이 근본적인 고장의 원인을 알아내기 위해 실험과 연구에 경쟁적으로 참여했고 이를 ‘고장(failure) 모드’라고 불렀다. 


실패를 연구하는 기업, 마쓰시타

삼성전기의 생산 라인 모습. 일본의 미네베아에서 전수 받은 기술 혁신을 통해 한국 최고의 정밀 금형 공장이 들어설 수 있었다.

한국은 달랐다. 일본과 미국에서 ‘신뢰 모드’를 배우기는 했지만 그것뿐이었다. 일본도 미국에서 배우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그들은 스스로 자신들만의 환경 안에서 고장 모드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한마디로 근원을 찾는 노력이다. 그런 과정이 쌓이고 쌓여 비로소 신뢰성을 갖출 수 있었다. 

초창기 TV는 진공관을 사용했는데, 고열로 고장이 잘 났다. 이를 막기 위해 등장한 것이 TV 케이스의 구멍이다. 공기를 잘 통하게 해 진공관을 냉각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이 구멍을 통해 쥐가 들어가 집을 짓고 심지어 새끼를 낳기도 했다. 수많은 신뢰성 연구 끝에 판매에 나섰는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쥐라는 변수가 생긴 것이다. 그렇다고 구멍의 크기를 줄이면 진공관에 문제가 생기는 딜레마에 빠지고 만다. 

일본인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그들은 일본의 쥐라는 쥐를 다 모았다. 그리고 쥐의 몸 크기와 구멍의 크기를 일일이 대조하며 실험했다. 어느 정도까지 구멍 크기를 줄여야 들어가지 못하나, 가장 작은 쥐가 들어가지 못하는 구멍 크기는 어느 정도인지 찾아낸 것이다. 근본을 탐구하는 노력, 그 탄탄한 토대 위에 기술을 쌓았기에 오늘의 일본이 자리할 수 있었다. 

우리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현대자동차의 엔진 개발 과정이다. 초창기 현대차는 미쓰비시에서 기술을 도입해 엔진을 만들었다. 이후 자체 개발에 나섰는데, 가장 큰 문제는 엔진 열의 냉각 기술이었다. 현대차의 엔진 기술자들은 엔진에 직접 구멍을 뚫어 일일이 열을 측정했다고 한다. 일본의 기업처럼 근원을 탐구하는 자세다. 이로써 현대차는 엔진에 관한 한 독자적 기초 기술, 기본 기술을 갖게 됐고 현대의 엔진을 벤츠와 미쓰비시에 역수출하는 성과로까지 이어졌다. 

미쓰비시의 회장이 현대차 이현순 부회장 시절에 회사에 찾아와 엔진 개발 현장을 돌아본 일이 있었다. 미쓰비시 회장의 방문 목적은 “엔진 개발이란 게 너무 어려우니 우리 기술을 쓰라”고 얘기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한국 기업을 방문하고는 “지금 한국을 보니 10년 안에 현대가 미쓰비시를 능가할 것”이라는 회한의 말을 토해냈다. 

근원을 탐구하는 모습을 보며 오늘날 일본 기업에는 없는, 과거의 자신들의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미쓰비시 회장의 말은 지금 현실이 됐다. 한국의 현재 1인당 국민소득은 2만 달러 근처에 정체돼 있다. 근원과 근본을 캐는 연구자들이 많아질 때 이 한계를 넘어설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업이든 개인이든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마쓰시타는 실패 사례를 연구해 공유하는 시스템이 있었다. ‘필드 엔지니어’가 따로 있어, 그가 공장 전체를 순회하면서 기술을 연구해 공유하는 역할을 맡았다. 예를 들어 납땜 기술이 부서별로 차이가 있다면 좋은 기술을 찾아내고 잘못된 것을 개선하면서 사업부 전체를 도는 식이다. 이렇게 하면 전체적인 수준이 높아진다. 

마쓰시타는 중요한 요소 기술마다 필드 엔지니어를 임명해 분석·교육·개선 작업을 펴 나갔다. 근원을 파고 서로 배우는 동안 일본은 세계경제 넘버 2, 제조업 넘버 1의 자리에 올랐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전자·철강·자동차 등은 글로벌 기술 수준에 도달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산업이 많아 낙후돼 있는 게 사실이다. 전체적인 수준은 아직 멀었다는 뜻이다. 서로 배우고 상호 보완하는 노력을 통해 전체 수준이 오르는 과정이 제대로 이뤄진다면 삼성 같은 기업이 10개도 나올 수 있다. 


거실보다 깨끗한 금형 공장

‘미네베아’라는 일본 기업이 있다. ‘니폰 미니어처 베어링’의 머리글자를 딴 이름이다. 미네베아의 창업자인 다카하시 회장은 건강상의 문제로 일찍 숨을 거뒀는데, 생전에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만나 한 가지 부탁을 전한 일이 있다. 

당시 미네베아는 베어링으로 시작해 일본의 전자 부품 회사를 인수, 동남아에서 생산하는 신규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다카하시 회장은 이 회장에게 “삼성이 전자 부품 사업을 도와주면 삼성이 필요로 하는 (베어링을 통해 습득한) 정밀 기술을 전수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그는 약속이 실현되기 전에 사망하고 말았다. 다카하시 회장은 후임 오기노 사장에게 유언을 통해 “내가 죽더라도 꼭 삼성을 찾아가 약속을 지켜라. 그래야 우리 부품 사업이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오기노 사장은 전임 회장의 약속을 지켰다. 삼성의 각 계열사에서 뽑은 20명의 정밀 가공 기술자들로 견학단을 꾸려 일본과 동남아의 모든 공장을 돌며 서로 협력할 부문을 찾았다. 그 당시 견학단의 리더가 바로 나였다. 

그런데 삼성을 경쟁자로 인식해서인지, 현장에선 제대로 된 견학이 이뤄지지 않았다. 사장이 직접 “다 보여주라”고 지시해도 모두가 무언가를 감추기에 급급했다. 이때 오기노 사장이 다카하시 회장의 명언을 전했다. “할 수 있는 사람은 안 보여줘도 언젠가 한다. 할 수 없는 사람은 보여줘도 못한다. 그러니 보여주지 않으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긴밀하게 협력하려면 다 보여줘라.” 그 바람에 미네베아의 정밀 가공 기술을 속속들이 들여다볼 수 있었다. 

견학을 마친 후 기술 연수를 보내겠다고 제의했다. 길게는 석 달, 짧게는 3박 4일의 일정이었다. 장기 연수로 실제 현장에서 일하며 배우는 등 많은 사람을 미네베아로 보냈다. 하지만 이들의 기술을 제대로 전수받아 혁신을 이룩한 건 삼성전기뿐이었다. 삼성전기 금형 공장이 한국 최고로 변모하게 된 계기다.

삼성전기는 금형 기술이 회사 존망의 결정적 요소라고 판단했다. 연수를 갔다 온 사람들을 모아 놓고 우리가 잘못한 것, 배워야 할 것, 개선할 것을 공정별로 논의하게 했다. 각자의 기록을 한자리에 모아 공유하고 토론해 새로운 개선안을 만들어 냈다. 

미네베아의 금형 공장은 특이하게도 나무로 바닥을 깔아놓았다. 일반 주택에서 쓰는 바로 그 나무 바닥이다. 대부분의 공장이 모두 콘크리트 바닥이던 시절이다. 이들은 클린 룸 설비도 갖추고 있었다. 마이크론 단위의 정밀도는 온도와 습도 등에 굉장히 민감하다. 이를 제대로 유지하려면 그런 환경이 필요했다. 

나무 바닥은 기술자들의 의식 자체도 달라지게 했다. 고급 나무 바닥에 무엇이라도 한 번 떨어뜨리면 바닥이 망가지게 돼 있다. 기름이나 물도 흘리지 않으려고 주의하게 된다. 당시만 해도 금형 공장은 지저분한 게 당연시됐다. 하지만 미네베아의 공장은 집 안 거실처럼 깨끗했다. 

삼성전기도 똑같이 바꿨다. 역시 직원들의 의식 자체가 달라졌다. 나무 마룻바닥을 가진 첨단 금형 공장이 드디어 한국에도 들어선 것이다. 의식이 바뀌고, 일하는데 정성을 기울이고, 배운 것을 연구해 개선하는 일이 삼성전기 안에서도 이뤄졌다. 급기야 삼성전기의 금형 생산성이 미네베아보다 30% 높아지는 성과로 이어졌다.

손욱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교수(전 삼성종합기술원장·농심 회장)
정리 장진원 기자 jj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