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革新

[손욱의 혁신 경영 이야기] ‘G2’로 변신한 중국 그 속에 숨겨진 성장 DNA

프로처럼 2011. 11. 15. 11:51

사람이 곧 혁신이다 (20)

“다른 곳은 법 때문에 안 되는 게 많지만, 여긴 법이 있어도 합리적으로 접근하고 설득하면 들어준다. 그래서 나는 중국을 신뢰한다.”

삼성전기에 있으면서 이병철 회장의 지시로 25개나 되는 신규 사업을 동시에 추진했다. 매출 300억 원에 생산 부품이 4개에 불과했던 작은 기업은 5년 만에 30개의 사업 부서를 갖춘 조직으로 성장했다. 회사 규모도 10배나 커졌다. 현재 삼성전기는 세계적 부품 회사 가운데 하나다. 사업을 진행하고 키우는 방법, 혁신 작업을 통해 기업의 체질을 튼튼하게 하는 노하우 등을 삼성전기 시절에 다 배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기업의 성패를 좌우할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인재다. 어떤 조직이든 혁신에 공감하고 스스로 노력하는 불씨 같은 인재들이 있게 마련이다. 그 불씨가 일으킨 혁신을 전파하고 격려하고 공유하는 노력을 할 때 비로소 발전하는 조직이 될 수 있다. 

이런 과정에서 반드시 챙겨야 할 것은 조직원 간의 커뮤니케이션이다. 30개가 넘는 팀을 운용하다 보면 항상 많은 문제가 생기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난 해당 사업팀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식사 후 그 식당에서 밤 12시까지 토론을 이어갔다. 주로 가던 집이 ‘해물탕집’이었기 때문에 무슨 문제라도 생기면 으레 “해물탕 먹으러 가자”는 말이 먼저 나올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해물탕집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출근하다시피 하게 됐다. 흔히 한글의 핵심을 ‘미음(ㅁ)’이라고 하는데, 나는 소통의 기본 원리도 바로 이 ‘ㅁ’에서 시작한다고 정리했다. 제일 먼저 ‘만나라’ 그 다음 ‘마셔라’, ‘말해라’, 또 마음을 열기 위해 발가벗고 ‘목욕해라’ 등이다. 조직원 간의 소통을 위해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캡션: 1991년 들어 삼성전기 공장이 처음 중국 둥관에 들어섰다. 사진은 1994년 삼성전자와 중국 톈진시의 복합단지 협의서 조인식 장면.

조직원 간에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지니 한 달에 한 번 하는 이사회의 자료를 따로 준비할 필요가 없어졌다. 매일 현장 밀착형으로 일했기 때문에 모든 데이터와 현장 상황이 머릿속에 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전까지 밤을 새워 다음날 회의 자료를 준비했던 다른 임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를 ‘원더링 어라운드 매니지먼트’라고 부른다. 리더가 한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보고받는 게 아니라 현장을 돌아다니며 즉석에서 보고 받고 지시하라는 것이다. 아쉽게도 한국 기업의 리더들은 대부분 사무실에만 앉아 있는 경우가 많은 게 사실이다. 

사람이 많이 모이고 토론이 많아질수록 아이디어도 많이 모이게 된다. 획기적인 아이디어는 기업의 중요한 성공 요소다. 삼성전기는 월 1회 회의를 열고 품질과 생산성 등 부족한 문제를 공고하는 시스템을 갖췄다. 해당 부서가 신청만 하면 연수원의 숙소를 빌려주고 1박 2일 동안 토론할 수 있는 시간을 내줬다. 

이후 대강 계산해 보니 1박 2일의 토론 합숙 동안 1명당 2000만 원의 효과가 나오는 것으로 나타났다. 20억 원을 절감해야 하면 100명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인간의 지혜라는 건 모여서 토론을 할 때 더욱 빛이 나게 마련이다. 삼성전기는 어떤 문제가 생기면 곧바로 “토론하러 가자”고 말할 정도의 기업 문화가 자리 잡았다.


1991년 삼성전기 최초로 중국 진출

1991년에는 삼성전기가 최초로 중국에 공장을 설립했다. 광둥성 둥관시에 있는 둥관 공장이다. 선전 바로 위에 있는 도시인데, 지금은 외자 기업의 천국이자 가장 번성한 산업 단지지만 우리가 들어갔을 때만 해도 개발 초기였다. 

당시에는 산둥성의 칭다오 시장이 우리 기업을 끌어들이기 위해 한국을 많이 찾았다. 인건비가 싸고 정부 협력이 잘되니 허가를 받으면 한 달 만에 공장이 돌아갈 정도였다. 칭다오는 인천에서 페리선을 타면 금방 도착할 정도로 가깝다. 짐이 따라가듯 배를 타고 가보기로 결정한 이유다. 그날따라 파도가 심해 늦게 도착했는데, 통관 절차는 일사천리였다. 

정말 놀라운 건 모든 통관 작업이 배 위에서 진행됐다는 것이다. 세관원들이 미리 작은 배를 타고 와서 기다리고 있다가 우리가 탄 큰 배로 와 항해하는 1시간 동안 모든 절차를 끝마치는 시스템이었다. 그때야 비로소 중국의 저력을 다시 보게 됐다. 

배에서 내려 짐을 수속하고 칭다오까지 가는데 4시간이 걸렸다. 당시 공장 구경을 시켜준 사람 있는데, 일본의 조그마한 상사맨이었다. 그는 칭다오에서 1인 주재원으로 20년 넘게 일한 베테랑이었다. 그의 안내로 ‘하이얼’ 공장을 방문했다. 가이드를 맡은 상사맨에게 “중국이 관료 사회라 어려울 텐데 어떻게 이렇게 잘 버티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중국처럼 안정적으로 사업할 수 있는 곳이 없다”고 얘기하는 게 아닌가. 그는 “다른 곳은 법 때문에 안 되는 게 많지만, 여긴 법이 있어도 합리적으로 접근하고 설득하면 들어준다. 그래서 나는 중국을 신뢰한다”고 말했다. 

현장을 돌아본 후 ‘하루라도 빨리 중국에 진출해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칭다오에 있는 여러 중소기업들이 삼성의 진출을 반대해 득보다 실이 많다는 판단에 둥관에 터를 잡기로 결정했다. 둥관은 이때 이미 전자 산업의 세트 기업이 많았다. 기왕 진출할 것이면 본거지로 들어가자는 각오도 섰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잘한 결정이다. 삼성은 현재 둥관과 선전 양쪽에 큰 공장을 가지고 있다. 

공장을 건설하면서 일본 상사맨이 이야기했던 ‘합리적 접근과 설득’을 직접 체험했던 일화가 생각난다. 한참 공장을 짓는 와중에 마을의 촌장 한 명이 매일 현장을 찾아왔다. 특별한 용무도 없었다. 그저 “필요한 것, 도와줄 것이 없느냐”고 물어보는 게 다였다. 

우리는 당연히 뭔가를 바라고 오는 것으로 치부해 버렸다. 당시 마침 주변에 대만과 홍콩의 공장이 있었는데, 우리를 방문한 그들은 “한국 기업은 어딜 가나 돈으로 매수한다는데 중국은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조언하곤 했다. “당신들이 그러면 여기 생태계가 나빠지니까 제발 그러지 마라”고 신신당부하는 말까지 들은 참이라 촌장의 방문은 더 고민스러웠다. 


시골 촌장의 ‘일류’ 마인드

그러던 차에 통관 문제가 생겨 자꾸만 ‘퇴짜’를 맞는 일이 잦아지기 시작했다. 매일 찾아오던 촌장 생각이 난 건 그때였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그에게 사정을 얘기했더니 당장 “그런 문제라면 내가 같이 가보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긴가민가하며 세관을 찾았는데, 얼마 안 있어 촌장이 직접 우리 짐을 찾아 들고 오는 게 아닌가. 촌장은 “내가 잘 얘기해 찾아왔다”며 중국 관리들을 설득한 얘기를 들려줬다. 

“우리 중국에 들어온 최초의 한국 기업입니다. 홍콩과 대만은 한자를 쓰지만 한국은 안 쓰죠. 그러니 틀린 게 고의는 아닐 겁니다. 중국의 체크 방법과 한국의 그것이 달라 착오가 생긴 것 같습니다. 이번에 통관시키면 내가 잘 얘기해 다음에는 착오가 없게 하겠습니다.”

그 뒤에 나는 촌장을 다시 만나 “촌장의 일도 많을 텐데, 어떻게 매일 이렇게 찾아와 물어보고 도와주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정색하며 “이것이 내 일”이라고 대답했다. 한 촌에서 공장을 유치하면 지방세가 할당되고 고용이 생기면 추가 지원이 이뤄진다는 것. 공장이 잘되고 많이 들어오면 그만큼 촌의 예산이 늘어난다는 말이었다. 

촌장은 “이런 걸 잘해야 좋은 평가를 받아 다음에 또 촌장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촌장이 할 수 있는 건 일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공장이 성공하고 고용을 늘리는 일이었다. 한낱 시골 촌장의 마인드가 이랬다. 오늘날 중국이 무서운 나라가 된 비결이다. 

첫 공장은 신축이 아니라 기존의 공장을 인수해 리모델링한 것이었다. 공장 건축에 쓰인 슬래브가 너무 얇아 전문가를 불러 강도 진단을 했는데, 놀랍게도 ‘이상이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정부에서 모든 공사 과정을 칼 같이 점검하기 때문에 부실 우려가 없다는 설명이었다. 

그 촌구석의 공장이 룰을 제대로 지키며 지었던 것이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며 ‘이 나라는 정말 무서운 나라가 되겠다’는 예견을 할 수 있었다. 룰을 지키고 훌륭한 리더(촌장)가 있었기에 둥관은 외자 기업의 천국이 됐다. 지금 광둥성은 한국 전체를 능가하는 경제력을 지닌 부유한 성이다. 

손욱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교수(전 삼성종합기술원장·농심 회장)

정리 장진원 기자 jj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