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革新

[손욱의 혁신 경영 이야기] 삼성의 핵심 조직 ‘비서실’의 경쟁력

프로처럼 2011. 11. 15. 11:51

사람이 곧 혁신이다 21

1992년 말에서 1993년 말의 1년간은 삼성에서 일했던 기간 중 가장 많은 것을 경험하고 보고 듣고 배운 시절이다. 바로 ‘비서실’이라는 조직을 통해서였다. 

삼성의 비서실은 최고경영자(CEO)의 심부름이나 하는 조직이 아니다. 이병철 회장 때부터 비서실은 전략 참모의 역할을 하는 삼성의 싱크탱크였다. 스태프로선 최고의 조직이다. 삼성은 기업 규모가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았던 1960년대부터 이미 비서실을 전략 참모 그룹으로 활용했다. 

이후 조직의 덩치가 커졌어도 비서실은 원활하게 움직였다. 가장 우수한 인재를 선발해 회장과 직접 멘토링·코칭을 거치기 때문에 훌륭한 인재와 참모로 커나가는 건 당연했다. 비서실 출신 CEO들이 많이 배출돼 삼성을 이끌어 오는 배경이다. 

군대도 500명 이상의 대대급부터는 인사·정보·작전·군수로 나뉜 참모 조직이 갖춰진다. 한 지휘관이 모든 병사를 관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참모 조직이 작전 계획을 수립하고 평가하고 추진하는 것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한 라인의 장을 직접 통솔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참모들의 지혜를 활용해 라인을 움직이는 조직을 운영해야 한다. 그래야 시행착오를 줄이고 올바른 방향으로 조직을 끌고 갈 수 있다. 

중소기업 CEO들은 흔히 회사가 성장해도 자기 혼자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의견 듣는 것을 소홀히 한다는 말이다. 이렇게 되면 판단 미스로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다. 중소기업 수준에서 도산하는 기업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삼성을 비롯해 성공한 대기업들은 참모 조직이 잘 작동하고 있다. 이병철 회장은 모두가 인정하는 인사 전문가였다.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해 1950년대에 이미 공채 제도를 도입해 인재를 발탁했다. 그리고 참모 조직인 비서실을 통해 핵심 인재를 양성했다. 

캡션 : 1993년 8월에 열린 비서실 임직원 간담회 모습. 이건희 회장은 이날 ‘질’ 경영을 위한 도덕성과 인간성 회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훌륭한 참모 조직이 기업 성공의 열쇠

사람을 키우기 위한 이 회장의 독특한 질문법이 있다. 회의를 하면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 질문하는 게 아니라 그저 “얘기해 보라”는 게 다다. ‘얘길 하라’는 건 그 사람이 맡은 조직에 대해 현재 상황, 가장 중요한 이슈·원인·대책·계획 등을 종합적으로 말하라는 뜻이다. 즉 조직의 장으로서 모든 일을 총체적으로 파악하고 있는지 알기 위한 질문이 바로 “얘기해 보라”다. 

회의에 소집된 이들이 각자 조직의 전체적인 상황 분석, 문제 인식, 해결 방안 등을 정리해 두지 않으면 아무 얘기도 꺼낼 수 없었다. 지엽적인 문제를 말하면 경영자로서의 자질이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 

“이러이러한 문제·과제가 있습니다”라고 얘기하면 경상도 사투리로 “와 그렇노”라는 질문이 돌아오게 마련이다. 이에 대한 답도 단편적인 얘길 해서는 합격점을 받을 수 없었다. 적어도 다섯 번 정도는 “와 그렇노” 소리를 들어야 그 질문이 끝났다. 문제의 본질과 심층적인 원인까지 알고자 하는 의도였다. 

“와 그렇노”가 끝나면 “우짤라 그러노”가 바로 이어진다. 바로 ‘대책’이다. 의사결정이라는 건 문제의 원인 분석, 거기에 대한 대책 수립이 핵심이다. 이걸로 끝나는 게 아니다. “이러이러하게 언제까지 하려고 합니다”라고 하면 “그거만 하면 다 되노”가 따라왔다. 모든 문제에는 반드시 잠재 문제가 있게 마련이다. 

계획이 실패로 돌아갈 위험성, 즉 리스크 요인들을 미리 설정해 대책을 세우고 있는지 확인하는 질문이었다. 요약해 보면 간단한 것처럼 보이는 질문에 ‘상황 분석→원인 분석→의사결정→잠재 문제 분석’의 순서가 정리돼 있었다. 

1986년에 삼성인력개발원을 중심으로 KT(미국의 케프너-트리고 박사가 고안한 문제 해결 분석법) 프로그래밍을 도입한 적이 있다. 미국의 최고경영자와 정치가 등 리더들을 연구했더니 그들 모두가 어떤 틀을 가지고 있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사고의 순서가 이병철 회장의 질문 순서와 같았다.
 
수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이 KT 프로세스를 도입했고 삼성도 EMTP(Effective Management Thinking System)라는 이름으로 들여와 전 조직에 교육시켰다. 경영에서 조직원들의 합리적인 판단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삼성은 네 가지 프로세스마다 임원 한 명씩을 앉혀서 관리할 정도로 이 시스템을 중시했는데, 필자가 ‘잠재 문제 분석’을 강의하는 1기 강사였다. 

EMTP는 결국 이 회장이 평상시에 회의하거나 대화하며 질문하는 순서와 똑같았다. 고수가 되면 사고와 문제 해결의 방법론을 자연스럽게 터득하는 것이었으리라. 나중에 일본의 혼다를 방문하니 이들도 KT 프로세스를 우리보다 먼저 도입해 교육하고 있었다. 혼다가 바이크를 만드는 작은 기업에서 글로벌 자동차 기업으로까지 크는데 이런 프로세스가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삼성도 그렇다.


신경영의 닻을 올리다

1993년 6월 7일. 기업인으로서의 내 삶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날이다. 이른바 ‘프랑크푸르트 신경영 선언’이 공표된 날이기 때문이다. 일본 도쿄 출장을 마친 이건희 회장은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당시 수행팀장이 바로 필자였다. 

새로 임명된 비서실 팀장이 회장의 해외 순방 팀장을 맡아 수행하는 게 삼성의 관행이다. 국내에선 회장과 직접 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적었다. 바쁜 일과 중에는 힘들지만 여행 중에는 소통할 수 있는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었기에 생긴 관행이었다. 마침 그해 초부터 비서실에서 일했던 내가 수행팀장 역할을 맡게 됐다. 

이건희 회장은 도쿄에서 프랑크푸르트로 출발하기 전날, 일본의 전문가들과 새벽까지 토론을 이어갔다. 밤을 꼬박 새우다시피 했는데 비행시간 직전까지는 일본 관계자들과 골프도 했다. 거의 30시간 이상을 잠을 자지 않고 깨어 있었던 것이다. 수행원들은 ‘틀림없이 비행기에서 주무실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번 수행팀장은 행운이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편하게 자면서 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런 예상은 비행기에 오르자마자 여지없이 깨졌다. 이 회장은 문서 하나를 주면서 “읽어보고 왜 그런지 대책을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그게 바로 유명한 ‘K 보고서’다. K는 1993년까지 13년간 삼성전자에서 고문으로 일해 온 일본인이다. 그는 오디오 사업 부문에서 설계 기술을 가르쳤다. 보고서의 내용은 대략 이랬다. 

“일본인들은 연구·개발자들이 부품이나 측정기, 각종 도구를 사용하고 나면 원래 위치로 다시 가져다 놓는다. 다음 사람이 금방 찾아 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연구 데이터도 잘 정리해 나중에 잘 활용한다. 중복이나 누락 없이 원활한 연구·개발이 가능한 이유다. 그런데 삼성은 13년 동안 정리정돈을 그렇게 강조해도 지금까지 안 된다. 내가 하는 건 한계가 있으니 이젠 회장이 조직 문화를 바꿀 때다.”

이 회장은 이 보고서를 건네며 “왜 안 되는지 원인과 대책을 찾으라”고 지시했다.

수행원은 모두 6명이었다. 결국 비행기 안에서 토론이 시작됐다. 책임의식·주인의식·룰(규칙·제도)·처벌 등이 없어서 그렇다는 둥 많은 논의와 답이 나왔다. 한두 시간 만에 답을 내어 보여드렸는데 이 회장은 그때까지도 잠을 자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 

몇 차례에 걸쳐 답을 드렸지만 결국 돌아오는 건 “다시”였다. 독일에 도착해 주재원을 방문하고 저녁을 먹고 또 토론이 이어졌다. 끝장을 내자는 심산이었다. 이후 몇 차례 더 보고를 해도 다 “아니다”라는 답만 들어야 했다. 

밤 12시가 넘어서까지 이런 상황이 이어졌으니 이 회장이 얼마나 잠을 자지 않고 있는지 감도 오지 않았다. 보다 못한 홍라희 여사가 “사람들도 피곤하니, 이제 답을 알려드리세요. 그래야 내일 또 일을 할 수 있죠”라고 건의하기도 했다.
 
이 회장은 그때서야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선문답 같은 답을 주며 “잘 생각해 보라”고 말했다. ‘신경영’의 시작이었다. 

손욱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교수(전 삼성종합기술원장·농심 회장)

정리 장진원 기자 jj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