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革新

[손욱의 혁신 경영 이야기] 한국의 산업 경쟁력과 ‘삼성자동차’의 실패

프로처럼 2011. 11. 15. 11:55

사람이 곧 혁신이다 24

삼성의 해외 진출, 그중에서도 중국 진출을 이야기할 때 잊지 못할 일이 하나 있다. 이건희 회장의 이른바 ‘베이징 발언’이다. 이 회장은 “해외에 나가더라도 거점 전략을 잘 세워야 한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들어 삼성이 오늘날과 같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데는 ‘수원 단지’가 큰 역할을 했다. 융합 효과와 시너지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거리가 굉장히 중요한 경쟁력이다. 이 회장은 수원 단지를 보며 ‘해외에 진출하더라도 전략적인 거점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중국의 톈진·광둥성·상하이(쑤저우) 등이 대표적인 거점 전략 단지다. 말레이시아와 멕시코 등도 한 지역에 삼성 단지를 몰아놓았다. 그러던 차에 중국에서 최고경영자(CEO)들의 전략 회의가 열렸는데, 바로 이때 “기업은 2류, 행정은 3류, 정치는 4류”라는 문제의 발언이 나오면서 큰 파장을 일으켰다. 



컴퓨터 업체 AST 인수 실패의 비화

삼성자동차가 실패하지 않고 현대자동차 등과 경쟁했다면 오늘날 한국의 전체 산업 경쟁력이 한층 높아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반도체 산업도 마찬가지다.

삼성은 1994년부터 AST라는 미국 컴퓨터 업체 인수를 추진했다. 그런데 마침 인수 허가 시점에 베이징 발언이 터져 나왔다. 당시만 해도 기업의 해외 진출을 정부가 강력히 장려할 때였다. 허가가 아니라 신고만 하면 투자할 수 있을 정도였다. AST 인수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시작됐다. 

이 회장의 베이징 발언 이후 AST 인수를 위한 신고서를 제출해도 접수 자체를 받아주지 않는 일이 이어졌다. 관련 부처에서도 “위에서 야단맞으니 접수할 수 없다”고만 얘기했다. 그런 관료들을 붙잡고 싸울 듯이 덤벼도 “우리 목 날아갈 일 있느냐, 살려 달라”며 오히려 그들이 애원하기까지 했다. 그 바람에 6개월이라는 시간이 허공에 날아갔다. 

AST는 당시 개인용 컴퓨터(PC) 업계에 혜성 같이 등장한 벤처기업이었다. 벤처 기업의 가장 중요한 자산은 결국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다. 일시적인 경영 미스로 좋은 매물이 시장에 나온 상황이었다. 이들을 받아들여 삼성의 컴퓨터를 세계적 수준으로 만들어 보자는 게 우리의 계획이었다. 하지만 6개월이 지나고 나니 중요한 인재들이 이미 다 빠져나가고 없었다. 결국 인수 자체를 백지화했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 아까운 기회였다. 

‘삼성자동차’도 비슷하다. 우리 기업사에서 두고두고 연구해 봐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 회장은 소문난 스포츠카·자동차 마니아다. 자동차에 관한 한 최고의 전문가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저 재벌 회장의 호화로운 취미로만 볼 수 없는 것이, 실제로 이 회장은 한국의 산업 구조에 대해 얘기하며 자동차 산업을 특히 강조했다.

“독일·일본·미국 같은 일류 국가의 산업구조를 봐라. 전부 자동차 산업이 맨 위에 있다. 지금 한국은 전자 산업이 제일 크다. 하지만 전자는 산업 규모 자체가 자동차와 다르다. 일류 국가가 되려면 자동차가 일류가 돼야 한다. 구조적으로 많이 취약한 자동차 산업에 삼성이 진출해야 한다. 삼성이 국가적으로 해야 할 일은 자동차를 대한민국 최고로 끌어올리는 일이다.”

당시 자동차 산업에 뛰어들기 위해선 1조 원대의 자금이 필요했다. 반도체는 투자 대비 이익이 확실하게 보장되던 시점이었다. 하지만 자동차는 미지의 분야였다. “리스크가 있다”고 주변에서 조언해도 이 회장의 생각은 확고했다. 

“메모리 반도체를 시작할 때도 모두 반대했다. 그런데 총력을 기울여 오늘날 전자 산업이 한국 최고, 세계적 경쟁력을 갖게 된 것이다. 이대로 가면 우리는 여기에서 그친다. 자동차 산업을 키우지 못하면 4만, 5만 달러 선진국이 될 수 없다.”

결국 모든 경영진이 이 회장에게 설득 당했다. 실제로 반도체 산업의 취약점은 전후방 파급효과가 작다는 것이다. 반도체 제작을 위한 소재 산업도 규모가 작고 제품을 이루는 산업 규모도 자동차와 비교할 바가 아니다. 자동차 한 대에 들어가는 부품은 2만 개가 넘는데, 반도체 소재 부품은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다. 

드디어 ‘자동차를 세계 일류로 만들어야 한다’는 회장의 목표 아래 삼성자동차가 출범했다. 1998년, 3년의 개발 기간을 거쳐 처음 만들어 내놓은 게 SM5다. 이 차는 미국의 성능 기관에서 최고의 품질로 꼽히기도 했다. 그런 자동차를 정치·사회적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바람에 포기하고 말았다. 지나고 생각해 보면 그 부담이라는 것도 별것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건전한 경쟁이 일류를 만든다

만약 현재 한국의 자동차 산업구조가 삼성과 현대가 긍정적인 경쟁을 하며 발전하는 단계라면 어땠을까. 독일도 벤츠와 BMW 등 몇 개 사가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고 일본과 미국도 모두 마찬가지다. 한국은 거의 독주나 다름없다. 자동차 관련 부품 산업과 기술 등이 아직 일류를 따라잡지 못하는 이유가 아닐까. 

반도체 산업도 통폐합 과정을 거쳐 LG와 현대를 하나로 통폐합했다. ‘하이닉스’라는 외로운 존재는 힘을 발휘하기 쉽지 않았다. 만약 LG가 계속해서 반도체 산업을 꾸려왔다면 삼성과 경쟁하며 한국의 반도체 수준은 지금보다 더 발전했을 것이다. 지금도 LG가 전경련에 비협조적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그 당시 생긴 감정 때문이란 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앞으로 미래의 기업인들을 위한 교훈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당시의 사례들을 분석하고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반도체 산업이든 자동차 산업이든 쌍두마차가 돼서 경쟁했을 때 더 강해지고 더 발전할 수 있다. 그렇게 됐다면 2만 달러를 넘어 4만, 5만 달러를 넘어가는 기틀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삼성전기도 자동차 부품을 많이 만들었는데, 당시 다 정리됐다. 현재 우리 산업군의 큰 역할 차지하는 게 자동차 부품인 걸 감안하면 안타깝기만 하다. 

현재 삼성전자는 대한민국 1등을 넘어 세계 1등이 됐다. 하지만 마냥 탄탄대로만 걸어온 건 절대 아니다. 이 회장은 틈만 나면 “큰 병, 암에 걸렸다. 망할 뻔했다”라고 표현하곤 했다. 첫 번째 고비는 역시 품질이었다. 

삼성은 선대 이병철 회장 때부터 사업을 시작하기에 앞서 깊은 통찰 과정, 특히 일본 기업을 깊이 있게 연구했다. 성공의 요체를 잘 뽑아서 최고의 설비·인재·기술의 삼박자를 갖추도록 한 것이다. 예를 들어 제일모직에선 한국 최고의 인재들을 뽑아 독일과 일본에 보내 교육시켰다. 또 설비는 독일산, 원료는 호주 최고의 소재를 들여왔다. 무엇이든 성공의 요소를 설정하고 확보해 실행하는 게 삼성의 원칙이다. 

그런데 삼성전자는 처음부터 최고의 기술처를 찾지 못했다. 후발 기업으로 급하게 시작한 면이 없지 않다. 산요와 기술제휴를 맺긴 했지만 효과가 적었고 재정적인 지원도 원활하지 못했다. 최소의 설비와 인재도 갖추지 못해 혼란스러웠다. 그러다 보니 초기에는 여러 문제들이 터져 나왔고 가장 큰 것이 바로 품질이었다. 

1970년대 대 후반 고도성장기가 지나고 2차 오일쇼크가 오자 품질 문제가 크게 대두되기 시작했다. 없어서 못 팔 때야 조금 못 만들었어도 됐지만 수요가 확 줄어드니 품질이 제일의 선택 기준이 된 것이다.
 
이 회장은 이때부터 출근 버스에서부터 시작해 생산 공장까지 직접 발품을 팔며 ‘일류 현장’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비서실에서 따로 감사팀을 내려 보내 감사하는 등 1년 이상 집중적으로 품질 문제를 제기하고 혁신했다. 그제야 비로소 문제가 해결되면서 삼성전자가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정리 장진원 기자 jj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