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革新

[손욱의 혁신 경영 이야기] 일본도 삼성도 쓴맛 본 ‘초기 해외 진출’ 시행착오

프로처럼 2011. 11. 21. 10:27

사람이 곧 혁신이다 25

1980년대 초반에 ‘재팬 애즈 넘버원(Japan as No.1)’이란 제목의 베스트셀러가 있었다. 일본의 제조업이 세계를 제패하면서 일본의 품질·생산성·제품 등 일본을 배우자는 메시지를 준 책이다. 그러고 보니 일본이 독일과 협력한 지 올해로 150주년이다. 1800년대부터 교류 협력이 시작된 것이다. 그래서인지 일본인들이 제일 좋아하는 서구의 나라가 독일이고 독일도 아시아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게 일본이다. 두 나라는 공통점이 많기 때문이다. 

독일도 일본처럼 중소기업이 강한 나라다. 독특한 장인 기술로 세계적 수준에 올라 국가 경쟁력 기반을 마련했다. 자기 직업을 천직으로 아는 천직 사상도 비슷하다. 

이러다 보니 양국 모두 테크니션(기능인)을 중시하는 문화가 자리 잡았다. 한국은 대학을 나온 엔지니어와 테크니션의 사회적 인식 차가 크다. 자연히 급여 차이도 크다. 하지만 일본과 독일은 차이가 없다. 두 나라가 모두 기능인들을 굉장히 소중한 사회적 자본으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독일은 초등학교 과정(5년)이 끝나면 직업인 교육을 받을 것인지, 대학에 갈 것인지가 이미 나누어진다. 직업인에 대한 존중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천직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존중하는 문화가 잡혀 있으니 기술력 강한 중소기업과 중견기업이 나라를 버티게 하는 산업구조를 이루게 된 것이다. 일본은 이런 독일을 많이 배웠고 실제 국민성도 잘 맞는 측면이 있다. 



일본과 독일의 닮은꼴과 끈끈한 우정

일본이 독일에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일본으로부터 배워야 할 게 참 많다는 생각이 든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후 미 군정 하에 있다가 6·25전쟁에 필요한 전쟁 물자 기지로 급격히 재편됐다. 군수물자를 싸고 좋고 빠르게 공급해야 하는 기지가 일본이었던 것이다. 이를 위해 미국은 처음부터 일본을 체계적으로 가르쳤다. 

에드워드 데밍 박사의 품질관리(QC)가 대표적인데, 훗날 일본의 TQC(Total Quality Control)로 발전했다. 미국식은 제조·생산에 치우친 방식이었는데, 일본인들은 ‘제조만 잘해서 되는 게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사람을 뽑고 교육하고 부품을 사고 시스템을 만드는 모든 활동이 품질관리라고 생각했다. 즉 ‘전사적 품질관리’를 체계화한 것이다. 

생산관리에 있어서도 미군들이 VE(Value Engineering) 등 합리적 생산방식을 가르쳤다. 이를 다루기 위한 중간 관리자 육성 프로그램도 있었는데, 이를 받아들여 체계적으로 교육했다. 여기에 자체적으로 새로운 과정을 만들기도 했는데, 나중에 한국도 이를 도입했다. 세계 최강의 제조 경쟁력을 갖춘 일본을 미국이 이길 수 없게 돼 미국 본토에 산업 공동화를 일으킬 정도로 성공한 나라. 이런 현상을 보고 쓴 책이 ‘재팬 애즈 넘버원(Japan as No.1)’이었다. 

그즈음 또 한 권의 책 나왔다. 제목은 ‘재팬 인 유에스에이(Japan in USA)’였다. 이 책은 미국 본토에서 일본 기업들이 어떻게 성공하고 실패했는지를 분석한 내용이다. 일본은 제조업의 힘을 이용해 미국, 즉 현지 진출을 많이 시도했다. 그런데 실제로 미국 땅에서 성공한 기업을 찾는 건 어려웠다. 강력한 제조업 기반을 가지고 있는 일본이 왜 미국에선 실패했는가. 이를 조사 분석한 책이 ‘재팬 인 유에스에이(Japan in USA)’다. 

책의 결론부터 말하면 ‘경영 방침’이 철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본은 하나의 단일 문화권이다. 그 속에서 하나의 경영 방침과 철학을 가지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하지만 미국은 다양한 인종과 문화를 가진 사람들의 집합체다. 이들을 고용해 경영하려다 보니 일본에서처럼 철저한 경영 방침을 가르치고 유지하지 못했다는 게 책의 설명이다.

처음 미국에 간 일본인들은 ‘별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일본에서처럼 열심히만 일하면 될 줄 알았던 것이다. 현지인을 채용하고 계약서를 체결할 때 일본식으로 ‘성실하고 근면하게 회사를 위해 최선을 다해 일한다’는 개념을 도입한 것부터가 잘못이었다. 

실제로 계약서대로 최선을 다해 성실히 일하는 사원은 거의 없었다. 그들에게 “왜 계약을 지키지 않느냐”고 물으면 “이게 우리의 가장 성실한 모습”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혼란에 빠진 경영진이 현지 컨설턴트를 불러 물으니 “미국을 잘 몰라서 그런 것이다. 미국이란 사회는 원래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되고 생각이 다 다르기 때문에 계약 시 최선·성실 같은 단어로는 안 된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일을 할 것인지 업무 분장을 체계적으로 명문화해야 한다. 그렇게 계약서를 다시 써라”는 조언이 나왔다. 

경영진은 컨설턴트의 말을 그대로 따랐다. 예를 들어 ‘아침에 30분 청소한다’, ‘기계를 청결히 사용하면서 하루에 몇 개 이상 생산한다’ 등 구체적인 업무 분장표를 만들었다. 그런데 제대로 일하지 않고 문제를 일으키는 건 여전했다. 다시 새로운 컨설턴트를 불러 그간의 과정을 얘기해 주며 물었다. 그러자 “미국인들은 어떤 내용을 한다는 것만 있으면 안 되고, 어떻게 하면 처벌하고 상을 주는지 알려줘야 한다. 즉 지킬 약속, 그것을 지키지 않았을 때의 처벌이 없는 계약은 아무 소용이 없다. 처벌 조항을 넣어라”는 말이 돌아왔다. 

신상필벌 조항을 넣자 그제야 조직이 제대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런 차이는 어디서 발생한 것일까. 물론 일본인 경영진이 미국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 측면도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일본 기업 자체가 가지고 있는 경영 방침을 미국에서도 철저하게 지키겠다는 생각을 가지지 않았던 데서 문제가 출발한다. 이런 생각이 확고했다면 처음부터 그런 시스템을 갖췄을 것이다. 그런데 미국인의 처지에 맞추려다 보니 시행착오를 거듭했던 것이다. 

삼성전자도 미국 진출 초기에 상당한 손해를 보며 고전했다. 사진은 2000년 미국의 고급 전자 제품 매장에 진열된 삼성 디지털TV와 매장 모습.


경영 방침 준수가 해외 진출 성공의 열쇠

일본인은 처벌 없이도 최고의 품질을 위해 노력한다. 미국에 와서도 무조건 미국인들에게 맞추는 게 아니라 미국 문화를 활용한 최고의 경영 방침을 세우고 이를 철저하게 지킨다는 노력과 의지가 있었다면 성공한 일본 기업이 더 많이 나오지 않았을까. 일본 사례와 비슷하게 삼성도 미국 진출 초기에 시행착오를 겪었다. 

처음 미국에 판매 법인을 설립한 삼성은 현지의 기업인 중 훌륭한 사람을 골라 CEO로 영입했다. 초기 얼마간은 고도성장을 이룩하면서 성공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많은 부실채권을 남기며 큰 손실을 봤다. 한마디로 실패였다. 

정식 채용 전 그는 자신의 요구 조건을 장문의 텔레타이프로 전해왔다. 너무 많아 다 기억하지도 못하지만 신용카드는 몇 장을 달라, 골프 회원권은 어디 것, 스포츠센터와 자동차는 어떤 것 등 급여 외에 품위 유지와 생활에 필요한 자질구레한 것들을 매우 구체적으로 요구한 내용이었다. 그때 우리는 ‘미국인은 뭐든지 확실하구나. 우리도 이런 걸 배워야 한다’며 그의 조건을 모두 들어줬다. 

하지만 그는 부실 영업으로 막대한 손해를 끼쳤다. 그런데 그가 나중에 하는 말이 “삼성이 내게 원하는 걸 해줬는데 뭐가 문제냐”는 것이었다. 삼성 측에서 “우리는 신생 업체이니 미국 내 시장점유율을 빠르게 올리고 매출만 올려주면 된다”고 얘기했다는 것이다. “그 정도의 높은 성장률을 달성하려면 부실을 감안해야 하는데, 매출을 올리기 위해 총력을 기울여 달라고 하니 판매 조건을 완화하는 등 고도성장을 달성했다. 무엇이 문제냐?” 오히려 그가 우리에게 되물었다. 

우리의 경영 방침은 최선을 다해 성장하면서도 부실이 없도록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미국인 CEO에게 이런 경영 방침이 아닌 매출 성장만 강조했다. 그러니 실패를 겪은 게 당연했다. 그 뒤 1985년에 반도체 영업을 시작하면서는 이때의 경험을 살려 철저하게 삼성의 경영 방침과 구체화된 목표를 제시했다. 조직 운영은 현지인에게, 즉 고용은 현지화했지만 삼성의 경영 방침이 철저하게 적용되도록 체제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손욱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교수(전 삼성종합기술원장·농심 회장)
정리 장진원 기자 jj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