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革新

[손욱의 혁신 경영 이야기] 삼성전자 ‘일류화’는 어떻게 시작되었나

프로처럼 2011. 11. 30. 11:59

사람이 곧 혁신이다 27


훌륭한 혁신 사례가 있다면 누가 됐든, 어디가 됐든 찾아가 배워야 한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도 그랬다. 이 회장은 1994년 즈음 일본의 이즈모시(市)를 찾았다. 이곳은 동해를 면하고 있는 작은 도시로, 이와쿠니 데쓴도(岩國哲人) 시장의 혁신은 바다 건너 한국에까지 알려졌다. 1936년에 태어난 이와쿠니 시장은 시를 국제도시로, 살기 좋은 도시로 만든 인물로 유명하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벤치마킹을 하기 위해 이 회장과 비서실 팀장들, 사장단 등이 모두 함께 시를 방문했다. 

이즈모는 이름 없는 중소 도시에 불과했다. 점점 쇠락해 가는 시를 보며 어느 날 지역의 원로들이 모였다. “이대로는 시가 몰락하겠다”는 판단이 선 원로들은 “훌륭한 시장을 모셔와 시를 부흥시키자”고 결의했다. 이즈모시 출신 인재들을 점검하다가 이와쿠니 데쓴도를 찾아냈다. 이와쿠니는 당시 미국 월스트리트의 모건스탠리를 거쳐 메릴린치의 부사장으로 일하던 잘나가는 금융인이었다. 

시의 원로들은 그에게 “당신이 이미 경제적으로 더 뭐가 필요하겠나. 지금까지 번 것만으로도 충분히 살 수 있다. 그러지 말고 고향을 최고의 도시로 만드는 게 얼마나 보람 있는 일이냐”며 집요한 설득에 들어갔다. 결국 항복 선언을 받아냈고 이와쿠니는 고향에 돌아와 선거를 통해 시장이 되었다. 1989년의 일이다. 

이즈모시를 방문해 보니 생각보다 놀라웠다. 우선 곳곳의 나무 한 그루도 대강 심은 게 아니라 철저하게 글로벌화 계획에 맞춰 심어져 있었다. 행복한 도시를 위한 마스터플랜도 돋보였다. ‘행정도 서비스’라는 유명한 슬로건 아래 백화점이나 대형 마트 같은 곳에 공무원 출장소가 마련돼 있었다. 

주중, 주말 할 것 없이 시민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에 출장소를 열고 시민 중심의 행정을 실현한 것이다. 시의 모든 행정은 시민 중심으로 돌아갔다. 시민을 위한 서비스 정신을 기업으로 돌리면 고객을 위한 정신으로 바꿀 수 있다. 이와쿠니 시장의 사례는 한 명의 리더가 세상을 어떻게 바꾸는지를 보여준 것이다. 



이즈모시와 장성군의 혁신

전남 장성군의 혁신을 이끌어 낸 고(故) 김흥식 군수. 장성군의 혁신 사례를 다룬 ‘주식회사 장성군’이란 책도 베스트셀러에 올라 더욱 화제가 됐었다.

한국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전남 장성군 얘기다. 장성군은 광주시 외곽에 자리한 곳으로, 얼마 전 작고한 김흥식 군수의 혁신이 군 전체를 변화시켜 화제를 모았다. 김 군수는 김황식 국무총리의 친형이다. 

김 군수는 ‘광주 같은 대도시에 살던 사람들이 은퇴하면 어디에 살고 싶어 할까. 환경이 아름답고 먹거리가 풍부하고 인심도 좋은 시골 마을에서 은퇴 생활을 즐기고 싶어 하지 않겠나. 이런 장성군을 만들자’고 결심했다. 

계획의 시작은 ‘장성아카데미’ 설립이었다. 군민이 지혜로워야 장성이 발전한다는 뜻에서 세운 아카데미에는 매주 저명한 선생님들을 모셔 강의를 열었다. 강의는 한 주도 빠지지 않고 진행됐다. 500명 정도가 정원인 강당에는 매번 계단까지 강의를 들으려는 사람들로 꽉 들어찼다. 군민들은 물론이고 지역의 군인·경찰·종교인 등 온갖 사람들이 모였다. 김 군수는 언제나 맨 앞에 앉아 강연을 경청했다. 그러다 보니 연사들도 장성군에 한 번 갔다 오는 게 자랑스러운 경력이 됐을 정도였다. 

군은 공무원들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600명에 이르는 공무원 전원을 유럽 연수를 보냈다. 예산이 없으니 비행기 값만 대주고 나머지 일정은 배낭여행 수준이었다. 

교육이 이뤄지자 아이디어가 샘솟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면 장성군을 세계에서 가장 좋은 동네로 만들까’하는 생각에 ‘나무를 심어 하늘에서 봤을 때 집이 보이지 않게 하자’는 20년 플랜이 나왔다. ‘유럽에 가보니 정말 아름다운 집들뿐인데, 우리도 이를 배우자’는 아이디어에 서울의 유명한 건축가를 찾아가 돈을 주고 설계도를 받아왔다.
 
이를 전시해 놓고 누구든지 무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권장했다. 그렇게 20~30년 노력하면 마을 전체가 아름다운 집들로 탈바꿈한다는 생각이었다. 아름다운 집과 수많은 나무, 교육을 받아 지혜로워진 사람들. 이것만으로도 얼마나 좋은 장성군이 되었을까. 공무원들도 이전과 달라졌다. 국가에서 하는 아이디어나 제안 공모에 응모해 매번 수상하며 상금을 받아왔다. 급기야 ‘주식회사 장성군’이라는 베스트셀러까지 나왔을 정도로 지방자치단체의 혁신 모범 사례로 이름을 떨쳤다. 



프로세스를 바꿔야 일류가 된다

1994년 1월 삼성전자의 전략기획실장으로 발령 받았다. 당시 전략기획실에선 마침 프로세스 혁신 작업이 막 시작되고 있었다. 각계의 전문가들을 불러 마스터플랜을 짜던 시기였고 필자 역시 이에 참여하게 됐다. 

‘언스트앤영’이라는 미국 컨설팅 회사에 자문을 받으며 프로세스 혁신을 시작했다. 마스터플랜 중 가장 오래 걸리고 힘들었던 작업은 ‘어떤 회사를 만들 것인가’하는, 즉 비전을 잡는 일었다. 대부분의 한국 기업은 목표를 세울 때 톱다운 방식을 적용한다. 하지만 언스트앤영은 전사적 공감대를 통해 비전과 목표를 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직원들 스스로가 정한 비전이라고 생각하면 참여의 수준이 달라진다는 뜻이었다.

언스트앤영의 컨설턴트들이 프로세스의 중요성을 일러주기 위해 연 강연이 생각난다. 그들은 테니스 공을 가져온 후 10명씩 그룹을 지어 늘어서게 했다. 그러고는 첫 번째부터 마지막 사람까지 얼마나 빨리 전달하는지 시간을 쟀다. 1m씩 띄엄띄엄 서 있으면 시간이 더 걸리게 마련이다. “어떻게 하면 시간을 줄일지 고민해 보라”는 요구에 서 있는 거리를 줄이자 시간이 제법 단축됐다. “다른 아이디어도 찾으라”는 주문에 한 줄이 아닌 빙 돌아서서 해보는 등 여러 가지 아이디어가 나왔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길 때마다 시간도 단축됐다. 

마지막으로 한 컨설턴트가 더 좋은 방법이 있다며 시범을 보였다. 그러고는 10명이 손바닥을 둥글게 만들어 수직으로 터널을 만들게 한 다음 위에서 공을 떨어뜨렸다. 

“프로세스란 바로 이런 것이다. 미국은 이미 95%의 일을 정보 시스템(컴퓨터)이 하고 아주 복합적이고 전문적인 분야의 5%만 사람이 한다. 삼성은 95%가 사람이 하고 있더라. 이걸 고치면 얼마나 달라지겠나. 이것이 바로 BPR(Business Process Reengineering)다.”

프로세스 혁신에서 제일 우선인 것은 이와쿠니 시장, 언스트앤영 등 세계에서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을 찾아가 배우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이를 능가하게 되면 비로소 최고의 프로세스가 되는 것이다. 삼성전자도 이후 미국의 휴렛팩커드(HP)를 찾고 제록스의 창고 시스템을 견학하고 IBM의 프로세스를 보고 배우며 토론해 비전을 세우기 시작했다. 

‘생산성을 300% 올리자’는 과거의 구호는 ‘우리의 프로세스를 세계 최고로 만들자’는 슬로건으로 바뀌었다. 제품 관리, 경영관리, 로지스틱스(물류) 관리 등을 통해 5년 안에 모든 걸 바꾸자는 목표를 세웠다. 1999년 말까지 6년 정도가 소요되는 일이었다. 기술의 일류화, 사람의 일류화, 일하는 방법의 일류화를 이룩하면 비로소 세계 일류가 된다. 그때부터 삼성의 ‘일류화’가 시작된 것이다. 

오늘날도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이나 대기업으로 성장하지 못하는 가장 어려운 이유가 일하는 프로세스의 차이에 있다. 한국의 컨설팅 회사들은 대부분 대기업 중심이다. 그러다 보니 중소기업·중견기업은 새로운 프로세스나 방법론을 체계적으로 도입할 수 있는 기회가 별로 없다. 그러니 일하는 방법에서 수준 차이가 나고 경쟁이 안 될 수밖에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시급한 국가적 과제다. 일하는 방법은 대학에서부터 가르쳐야 한다. 미국의 대학에선 학문의 본질과 함께 일하는 방법, 즉 프로세스를 다 가르친다. 대학을 졸업해 중소기업에 입사해 이를 전파하면 전체적인 기업 경쟁력이 올라가는 시스템이다. 

핀란드는 대부분의 대학이 폴리텍, 즉 지역과 산학협력 시스템으로 이뤄져 있다. 대학과 지역사회가 함께하는 교육 시스템이다. 

정리 장진원 기자 jjw@hankyung.com

손욱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교수(전 삼성종합기술원장·농심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