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革新

[손욱의 혁신 경영 이야기] 세상에 없는 새로운 제품, 삼성 ‘월드 베스트’의 시작

프로처럼 2011. 12. 8. 15:04

사람이 곧 혁신이다 28


삼성전자 전략기획실에서 추진했던 프로젝트 중 하나가 ‘복합 단지’ 개발이다. 이건희 회장은 신경영을 추진하면서 ‘복합화’라는 화두를 던졌다.

“앞으로는 복합화의 시대다. 여러 곳으로 분산돼 있는 요소를 한 지역에 모아 시너지를 창출하도록 복합 단지를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

때마침 당시는 중국 진출의 큰 그림을 그릴 때였다. 역시 기본 발상은 복합화였다. 어떻게 하면 융합과 시너지 실현을 위해 좋은 환경을 만들어 낼수 있을까. 수원의 삼성전자 단지는 165만2500㎡(50만 평) 규모인데, 이 회장은 여기에 종합연구소를 만들고 싶어 했다. 연구원이 1만, 2만 명씩 늘다 보니 여기저기 분산되기 시작했고 늘어나는 연구 인력 수요를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규모가 팽창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성공 원동력 중 하나가 바로 이 종합연구소다. LG는 지금도 분야별로 분산돼 있다. 삼성은 초기 10여 년 동안 모든 연구·개발 파트를 수원으로 통합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전자를 중심으로 코닝·전기 등이 이 안에 다 들어왔다. 서로 돕고 협력하고 회의할 일이 있으면 단 몇 분 만에 다 모이는 게 가능했다. 연구원들과 엔지니어들이 언제든지 모여 교류 협력할 수 있었다. 시간만 단축한 게 아니다. 교류 활성화를 통해 융·복합을 효율적으로 달성한 모델이 바로 수원 단지였다.

연구·개발(R&D) 건물 하나를 크게 지어 모든 부문을 통합하자는 게 이 회장의 구상이었다. 어떤 부문이든 5분 내에 교류가 가능하면 엄청난 시너지가 나올 것이란 계산에서였다. 그런데 인근 오산 비행장의 고도 제한 때문에 27층 이상 되는 건물을 지을 수 없었다. 현재 수원에 가보면 27층 규모의 R&D 건물 4개동이 나란히 있는 걸 볼 수 있다. 하나의 단지 안에 R&D 연구소가 긴밀하게 배치돼 있는 기업은 지금도 찾아보기 어렵다. 삼성의 저력 가운데 하나다.



복합 단지 개발로 시너지 극대화

수원에서의 성공으로 해외의 산업단지 건설도 복합화가 기본 전략이 됐다. 현지 교섭력, 기업 간 교류 협력을 통한 관리 효율·시너지 창출이 복합화의 기본 개념이다. 이에 따라 영국의 윈야드, 미국의 티후아나(멕시코), 말레이시아의 세렘반, 브라질의 마나우스 단지 등 지역별로 커다란 하나의 거점이 마련되기 시작했다.

반면 중국은 엄청나게 넓은 땅덩어리로 수십 개 나라가 모인 것과 같은 셈이어서 하나의 단지로는 부족하다는 판단이 섰다. 결국 여러 지역에 분산 배치하는 방법을 찾자고 결론을 내린 후 5개 권역으로 나눴다. 둥베이삼성(東北三省), 베이징·톈진, 상하이·쑤저우, 광둥성, 서안 중심의 내륙 등이다. 5개 권역 중 아직까지 삼성이 진출하지 않은 곳이 두 곳 있다.

바로 둥베이삼성과 서안 내륙이다. 둥베이삼성에는 예전부터 수많은 중소기업들이 진출해 있었다. 삼성은 이곳에 단지가 들어서면 여기서 생산한 제품이 북한으로 수출되는 거점으로 변한다는 판단을 내렸다. 언젠가는 북한, 특히 평양 근교에 삼성전자 복합 단지가 들어가고, 이를 계기로 북한 경제를 살리는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따라서 그 시점에 둥베이삼성 단지를 세우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봤다. 후일 상황을 봐가면서 진행하기로 했다. 그래서 지금도 이 지역에는 삼성이 없다. 서안 내륙은 지금까지도 제대로 된 상권이 형성돼 있지 않다. 당연히 그때도 계획을 미뤄 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글로벌 복합 단지 플랜을 짜고 건설을 시작했다. 모든 마스터플랜은 전략기획실이 주도적으로 해나갔다. 당시만 해도 복합 단지는 굉장히 신선한 전략이었다. 일례로 일본 산업계는 분산 배치가 정설처럼 굳어져 있던 때다.

이 회장은 산업단지뿐만 아니라 기술 개발에도 시너지 창출을 강조했다. 1996년 선보인 ‘명품 플러스원’ TV가 대표적이다. 그전까지 생산된 TV는 모두 브라운관의 비율이 4 대 3이었다. 방송 화면에 카메라로 촬영한 화면이 다 나오지 않고 일부 잘린 부분이 있는 것도 바로 이 비율 때문이었다. TV 규격상 1인치가 숨겨져 안 보이는 것이다.



세상에 없는 제품을 내놓다

이 회장은 “100% 다 보여주는 화면을 만들어야지, 왜 4 대 3이라는 규격에 얽매이나. 이것을 바로잡아라”고 지시했다. 전 세계 그 어느 누구도 4 대 3을 스탠더드 규격으로 당연시하던 때에 생각의 틀을 깬 것이다. 방송국에서 송출할 때의 화면 비율은 12.8 대 9였다. 방송 장비를 전혀 손댈 필요 없이 TV만 바꾸면 숨겨진 1인치를 다시 볼 수 있다는 말이었지만 현장 기술자들은 100% 반대했다.

이 회장은 생각의 틀을 깨고 싶어 했다. 하지만 커진 비율을 맞추려면 삼성전자 혼자서는 불가능했다. 12.8 대 9라는 전혀 새로운 규격에 맞춰 코닝이 새로운 유리를 만들어야 했고 이에 따라 삼성전관(SDI)이 새로운 브라운관을 만드는 건 당연했다. 여기에 모든 관계사가 모여 프로세스를 정하고 비용을 분담해 성과를 창출해야 하는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하지만 기술 복합화를 통해 결국 제품 생산에 성공했다. ‘명품 플러스원’ TV는 이후 삼성의 TV가 세계적인 기술력으로 명품 대접을 받기 시작하는 첫걸음이 됐다. 세계적인 일류 제품보다 20% 싼 데서 출발했던 삼성전자 TV는 이 제품을 통해 96%까지 가격을 따라잡는 데 성공했다.

존경받고 위대한 기업이 되는 길은 무엇일까. 답은 간단하다. 세상에 없는 새로운 것을 창조하면 된다. 남의 것을 모방하면 ‘잘했다’고 칭찬을 받을 수 있지만 ‘존경’은 받지 못한다. 기술계에선 이를 ‘도미넌트(dominant: ‘우세한, 지배적인’이란 뜻) 디자인’이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흑백 TV에서 컬러 TV로 바뀐 게 도미넌트 디자인이다. 요즘 삼성과 LG가 ‘3D TV’ 전쟁에 나선 것도 언젠가는 3D TV만 살아남는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3D TV가 도미넌트 디자인이 되는 것이다. 이 회장이 주도해 탄생한 ‘명품 플러스원’ TV의 성공은 삼성전자 기술인들의 마음속에도 깊은 자긍심과 자신감을 안겨줬다. 바로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우리가 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삼성전자는 1996년 ‘엠페러(emperor)’라는 전문가용 스피커도 개발했다. 당시 이 오디오 시스템 가격은 2000만 원에 달하는 초고가였다. 이 회장은 오디오와 소리에도 전문가 수준의 식견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TV의 음질도 명품 오디오의 소리를 따라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회장은 이를 위해 일본의 럭스(LUX)라는 회사를 인수했다. 명품 오디오 시스템을 만들던 기업이다. 이 회장은 이후에도 한국 최고의 오디오 전문가들을 모아 사업팀을 만드는 등 정성을 기울였다. 오늘날 삼성 TV의 음질이 세계 최고를 유지하는 밑바탕이다.

엠페러 역시 한국에선 누구도 시도하지 않는 세계 최고 품질에 도전해 성공한 사례 중 하나다. 삼성전자뿐만이 아니다. 1991년 제일모직은 세계에서 세 번째로 ‘1PP’ 명품 복지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1PP는 수입 원단과 또 다른 차원의 최고급 복지를 말한다. 어떤 원단보다 감촉이 좋은 극세사 옷감이다. ‘명품 플러스원’ TV나 ‘엠페러’ 오디오 시스템, ‘1PP’ 복지 등은 모두 세계에서 제일가는 품질의 제품들이다. 바로 ‘월드 베스트’라는 모델을 만들어 내기 시작한 것이다.

훗날 삼성SDI 사장으로 갈 때의 얘기다. 이 회장은 내게 단 하나의 조건을 걸었다. 이미 당시 세계 최대 브라운관 생산 기업이었던 SDI를 기술로도 1등을 만들어 달라는 얘기였다. 판매는 SDI가 1등이었지만 기술력 1등은 일본의 소니였다. 소니는 트리니트론이라는 독창적 컬러 브라운관을 만들어 세계를 제패했다. 일반 브라운관보다 20~30% 비싸면서도 독보적 위치를 차지한 제품이었다. 어찌 보면 당시의 소니는 지금의 애플 같은 기업이었다.



손욱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교수(전 삼성종합기술원장·농심 회장)


정리 장진원 기자 jj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