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革新

[손욱의 혁신 경영 이야기] 가치 혁신·목표 지향이 만든 ‘글로벌 1등’ 삼성 TV

프로처럼 2012. 1. 3. 19:14

사람이 곧 혁신이다 30

삼성전자는 1998년 ‘VIP센터’를 세웠다. VIP는 ‘밸류 이노베이션 프로젝트(Value Innovation Project)’의 영문 첫 글자에서 따왔다. 가치 혁신 프로젝트쯤으로 번역할 수 있다. VIP센터의 설립에는 프랑스의 세계적 경영대학원인 인시아드 비즈니스스쿨 김위찬 교수의 역할이 컸다. 김 교수는 현재 인시아드의 석좌교수다. 

김 교수는 그 유명한 ‘블루오션’ 전략을 제창하고 책으로 펴낸 세계적 석학이다. 김 교수는 1996년에 고국을 방문해 강연회를 열었다. 그때 제시한 이론 중 하나가 ‘밸류 이노베이션(VI)’이다. 요약하면 모든 상품을 고객의 관점, 고객이 인식하는 가치 요소로 분석한 후 어떤 가치에 초점을 맞춰 상품을 개발하고 마케팅할 것인지를 정해야 한다는 개념이다. 

호텔을 예로 들자면 고객이 원하는 가치 가운데 ‘조용하고, 값이 싸고, 음식이 맛있고, 잠자리가 포근하다’ 같은 여러 요소가 있을 것이다. 그중 경쟁사들이 어떤 고객의 가치를 중요시하는지를 분석해 보면 그 속에서 자신만의 체계적인 가치 기준을 만들 수 있다는 이론이다. 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 VIP센터였다. 

이후부터 삼성전자는 제품을 개발할 때 VIP팀 전체가 참여해 VI 전략을 집중적으로 수립하고 진행했다. 그룹에서는 이들이 원하는 모든 장소와 컨설팅을 제공했다. 팀원은 각계의 전문가들로 이뤄졌다. 원가를 혁신하는 밸류 엔지니어링(VE) 전문가도 있었고 트리즈·품질·식스시그마·VI 등 다양한 분야의 프로페셔널들을 한자리에 모아 놓았다. 이들의 도움으로 신제품 프로젝트팀이 결사대처럼 움직였다. VIP센터는 그때부터 ‘삼성전자 이익의 절반을 창출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 교수의 영향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페어 프로세스(Fair Process)’ 역시 그의 지도하에 진행된 대표적인 혁신 작업이다. 

페어 프로세스는 말 그대로 프로세스 자체가 공정(페어)하다는 뜻이다. 즉 의사소통의 공정함을 말한다. 페어 프로세스에 관한 좋은 예가 하나 있다. 한 전자 회사가 있다. 이 회사는 부산에 공장이 하나 있고 수원에도 하나가 있었다. 양쪽 공장 모두 노조가 있는데 수원 공장의 노조는 아주 온건한 편이다. 이들은 회사 정책에도 우호적으로 협력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1969년 삼성전자 수원 단지의 초기 모습. 이병철 회장은 제휴사인 일본의 산요보다 훨씬 큰 대단지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실행에 옮겼다.


삼성 이익 ‘절반’ 창출하는 VIP센터

반대로 부산 사업장은 강성 노조로 유명했다. 사측에서 뭘 하려면 항상 반대와 트집이 이어진다. 회사 측에선 자연스럽게 ‘부산은 골머리, 수원은 좋은 곳’이란 인식이 자리 잡았다. 그러던 어느 날 ‘셀 방식’이라는 새로운 공장 관리 방식을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컨베이어에서 각자 분업으로 일하는 기존 방식을 혁신하자는 얘기다. 컨베이어 방식은 단순한 일을 반복하기 때문에 피곤함을 빨리 느끼고 자존감도 떨어지는 등 불만이 많았다. 또 열심히 일해도 다른 사람 때문에 성과를 인정받지 못하는 구조적 불합리함도 있었다. 

반면 셀 방식은 소수의 인원이 활동하며 생산성을 높이는 기법이다. 경영진은 새로운 방식에 대해 부산 사람들이 또 반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래서 부산 공장 직원들에게는 사전에 의견을 묻고 설명회나 토론회를 거쳐 잘 설득하기로 결정했다. 

반면 수원 공장은 바로 준비해 시작해도 된다고 판단했다. 이후 수원 공장에는 어느 날부터인가 까만 양복에 넥타이를 맨 사람들이 무언가를 측정하고 돌아다니는 모습이 자주 목격됐다. 셀 방식 도입을 위한 컨설팅 업체의 직원들이었다. 못 보던 사람들이 회사 안을 돌아다니자 직원들 사이에선 구조조정이나 어려운 작업 명령 같은 흉흉한 소문들이 돌기 시작했다. 급기야 ‘수원 공장에만 불이익을 주려고 한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지금까지 어디보다 평화롭던 사업장에는 급기야 ‘결사 반대’ 현수막이 붙기 시작했고, 곧 노사분규로까지 이어졌다. 원인은 단 하나, 커뮤니케이션의 부재였다. 

수원과 달리 부산은 처음부터 설명과 토론, 의견을 듣고 반영하는 과정을 거쳤다. 그러자 경영진의 예상과 반대로 모든 일이 원활하게 진행되는 게 아닌가. 반대로 수원 공장은 그때부터 새로운 혁신 방법을 도입하기까지 몇 년 동안 고생해야 했다. 이것이 바로 페어 프로세스의 차이다. 기업 조직은 어떠한 경우에도 이런 과정을 소홀히 해선 안 된다. 삼성전자도 이와 같은 커뮤니케이션 채널·조직을 만드는 데 굉장한 노력을 기울였다. 



삼성전관 최고경영자(CEO)가 되다

1970년대 말에 열린 품질 대상 시상식이 생각난다. 심사위원인 아주대 교수 한 분이 “금성(LG)은 20년 이상 됐고 삼성은 10년 된 기업이다. 공장을 죽 돌아보니 삼성공장 벽에는 ‘세계 일류가 되자’는 말이 붙어 있더라. 반면 금성은 한국 1등이란 소리도 없었다. 목표도 단계가 있는 것이다. 우선 한국 1등부터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얘기했다. 십수 년이 지나 1990년대 중반에 그분을 다시 만났다. 필자를 보자마자 이런 말을 들려줬다. 

“내가 그때 말을 잘못했다. 안식년이 돼서 미국에서 1년간 공부했다. 그때 배운 것 중 하나가 ‘목표를 써 놓고 항상 외우는 게 얼마나 중요한가’라는 것이다. 비주얼라이제이션, 즉 목표의 가시화다. 목표를 세워놓고 끊임없이 되뇌면 반드시 이뤄진다고 한다. 그때 생각난 게 삼성전자였다. 형편없는 공장에서 세계 1등을 외쳤던 삼성전자는 지금 실제로 세계 1등이 되었다.”

1995년 12월 삼성전관(현 삼성SDI) 대표이사로 발령이 났다. 1975년 삼성전자에 입사한 이후 20여 년 만에 비로소 한 기업의 최고경영자(CEO)가 된 것이다. 삼성전관은 삼성전자가 설립된 이듬해인 1970년에 만들어진 삼성 계열사 중 가장 오래된 회사 중 하나다. 

이병철 회장의 꿈은 전 세계 TV 산업에서 1등에 오르는 것이었다. TV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전자 산업의 꽃’으로 불린다. TV에서 1등을 하면 세계 전자 산업에서 1등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1등이 되기 위해선 1등 기업을 직접 보고 배워야 한다. 

삼성전자는 설립 초기 일본의 도쿄산요(산요의 전신)와 제휴 관계를 돈독히 맺었다. 당시에는 마쓰시타가 일본 최고의 기업이었는데, 마쓰시타는 이미 아남과 제휴를 맺고 있었다. 도시바는 대한전선, 히타치도 금성사와 제휴를 맺었다. 삼성으로선 제휴를 맺고 선진 기술을 도입할 수 있는 곳이 산요밖에 없었던 셈이다. 

전자 산업 시찰을 위해 도쿄산요 공장을 둘러본 적이 있는데, 비행장 격납고를 공장으로 개조해 부지 면적이 132만2000~ 165만2500㎡(40만~50만 평)에 달했다. 모든 작업과 공정이 그 안에서 이뤄지는 복합 센터 같은 대단지였다. 당시 일본의 기업들은 대부분 작은 공장을 전국에 산재한 형태로 운영했다. 도쿄산요만 그렇게 대단지를 꾸며 놓고 있었다. 

이병철 회장은 “산요보다 더 크게 만들자”는 결정을 내렸고 이렇게 해서 수원 단지가 만들어지게 됐다. 오늘날 삼성전자 단지 부지는 165만2500㎡ 규모다. 삼성전기·삼성코닝·삼성전관이 빙 둘러 있는 대단지다. 오늘날 융·복합을 강조하는데, 이 회장은 이미 그때 ‘지리적으로 가까워야 융·복합이 자연히 이뤄진다’는 개념을 그리고 있었다. 이 회장은 이를 “얼굴을 마주 보고 힘을 합쳐야 한다”는 말로 표현하곤 했다. 

당시 대한민국의 어느 누구도 이런 대단지를 생각한 사람이 없었다. 1등 TV가 목표였던 이 회장은 TV의 가장 중요한 부품인 브라운관 공장을 세웠고 진공관으로 유명했던 일본의 NEC와 합작해 ‘삼성NEC’를 출범시켰다. 

브라운관을 잘 만들기 위한 부품으로 유리의 중요성이 부각돼 미국의 코닝과 합작한 ‘삼성코닝’도 설립됐다. 이후 1973년에 삼성전기가 세워지면서 튜너·콘덴서·변압기 등의 전기 부품과 유리·브라운관을 거쳐 세트까지 완성되는 수직 계열화가 비로소 이뤄졌다. TV 1등이라는 당시의 목표는 지금 현실이 됐다. 



정리 장진원 기자 jjw@hankyung.com

손욱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교수(전 삼성종합기술원장·농심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