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革新

[손욱의 혁신 경영 이야기] IMF 외환위기와 구조조정의 아픔

프로처럼 2012. 2. 14. 15:35

사람이 곧 혁신이다 35

삼성SDI가 2차전지 부문에서 최고가 된 데에는 숨겨진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사람, 즉 인재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사례다. 2차전지로 사업 방향을 틀었지만 막상 관련 기술에 대해선 아는 것이 많지 않았다. 한마디로 제조 기술이 없었다는 뜻이다. 그런 와중에 일본 최고의 기술자와 전문가들을 전격적으로 스카우트했다. 당시만 해도 2차전지 세계 최고였던 소니의 기술자들을 세트로 확보하게 된 것이다. 각각 품질·생산·기술 담당인 이들을 스카우트하게 된 사연은 이렇다. 

소니는 당시 리튬전지에서 가장 앞서가는 기업이었다. 그런데 이를 개발한 곳은 소니 본사가 아니라 소니 자회사의 자회사, 즉 손자회사쯤 되는 곳이었다. 작은 회사가 엄청난 기술력을 발휘해 세계 최고의 리튬전지 회사로 큰 것이다. 리튬의 중요성이 알려지고 부각되면서 본사에서 이들을 흡수 통합하게 됐다. 그러고 나서 소니 사람들을 파견했는데,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일반적으로 본사 사원이 자회사에 가면 한두 계급 올라가게 마련이다. 이때 회사의 주축이었던 생산·품질·기술·기획 등 4명이 사직서를 내게 됐다. 어찌 보면 아주 사소한 감정적인 문제였다. 

이들은 모두 지긋한 나이에 평생을 기술에 바쳐온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젊은 친구들이 와서 기술자를 존중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본사의 관료주의적 시각으로 대하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이들은 크게 실망했다. 급기야 기획을 맡았던 이는 따로 컨설팅 회사를 차려 독립했다. 그리고 나머지 세 명이 모두 ‘현장 투입’을 조건으로 삼성SDI에 입사했다. 소니 같은 선발 주자를 따라잡게 된 데는 이들의 공이 지대했다. 



대기업 절반이 퇴출된 소용돌이

사람이 중요한 건 누구나 알고 있지만 때론 품 안에서 내보내는 아픔을 겪기도 한다. 1997년 찾아온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때가 대표적이다. 위기는 모든 것을 비상사태로 돌렸다. 30대 그룹 가운데 거의 절반이 퇴출됐고 중견기업의 27%가 사라졌다. 

변화와 혁신은 사업 규모 조정, 인원 조정, 자리 배치 등의 변화가 불가피한 작업이다. 다행히 삼성SDI는 식스시그마와 프로세스 혁신으로 간접 부문의 생산성을 300% 올리고 나머지는 다른 일을 해야 한다는 목표가 처음부터 있었다. 천안에 새로운 사업장을 준비하고 거기서 플라즈마 디스플레이 패널(PDP), 전지 사업 준비 등을 위해 이미 사람들을 이동시키던 중이었다. 당연히 구조조정 규모도 작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원 등 많은 사람들을 구조조정하지 않을 수 없는 어려움에 봉착했다. 그때가 기업인으로서 가장 어렵고 힘든 때가 아니었나 싶다. 함께 혁신하고 식스시그마를 도입하며 밤낮없이 일했는데, 도대체 누구를 내보낸단 말인가. 대상자가 정해지면 막상 통보는 어떻게 하나. 정말 가슴 아픈 일이었다. 

한 번은 부산 사업장을 찾은 적이 있다. 그곳에 친척이 한 분 계셨는데, 생각의 깊이가 있는 어른이었다. 저녁을 같이하며 어려움을 토로하니 책 한 권을 추천했다. ‘후안흑심’이란 제목으로, 지금은 절판된 책이다. 

후안흑심은 자고로 ‘중국의 영웅들은 전부 낯이 두껍고, 마음이 시커먼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책에선 삼국시대의 영웅인 유비를 가장 낯이 두꺼운 이라고 말한다. 전쟁에서 지면 자결을 택하기보다 반대편, 심지어는 적군인 조조에게조차 머리를 숙이며 연명한 이가 유비다. 조조는 그렇게 유비를 받아들이고 나선 “천하의 영웅은 유공과 나밖에 없지 않느냐”며 떠보기도 했다. 유비는 그럴 때마다 손을 떨어 찻잔을 떨어뜨리며 절대 그렇지 않다고 얘기하곤 했다. 

반면 항우는 낯이 가장 얇은 사람이다. 백전백승하다가 맨 마지막 한판 전쟁에서 패한 그는 “초나라로 데려온 8000 군사를 다 잃었다”며 자살을 택했다. 그런데 유방은 100전 100패해도 또 돌아가서 다음을 준비했다. 낯이 두꺼운 것이다. 유비도 남들 보기에는 연명하는 모양새가 낯이 두껍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이였다. 하지만 그에게는 ‘누가 욕을 하더라도 이를 참고 견뎌 나라와 백성을 구하겠다’는 큰 뜻이 있었다. 아비규환의 세상을 통일해 다시 한나라처럼 태평성대를 가져오려면 자신이 살아야 한다는 게 지상 과제였던 것이다. 만일 낯이 두껍지 못하면 이를 견딜 수 없었을 게다. 

IMF 외환위기와 이로 인한 구조조정은 기업인으로서 가장 가슴 아픈 기억이다. 사진은 1997년 12월 3일 구제금융 합의안에 서명하는 당시 임창열 경제부총리와 미셸 캉드시 IMF 총재.


무조건 안고 가는 게 능사는 아니다

흑심의 대표 주자는 조조다. 조조는 천하통일을 위해 방해가 되는 것은 가차 없이 처단했다. 한 번은 조조가 전쟁에 패해 혼자 말을 타고 도망친 적이 있었다. 도중에 친한 옛 친구를 만났는데, 힘든 조조를 제 집에 재워 줬다. 한참 자다 이상한 소리에 눈을 떴는데, 밖에서 친구의 부인이 칼을 가는 소리가 들렸다. “술을 대접해야 하니 돼지를 잡으라”는 남편의 말을 듣고 부인이 칼을 갈고 있었던 것. 하지만 조조는 친구가 자신을 죽이려고 한다고 생각했다. 마침 집에 없는 친구가 관가에 신고하러 갔다고 생각한 조조는 부인을 죽이고 도망쳤다. 

그런데 길을 가다 술을 들고 뛰어오는 친구를 만났다. 큰 뜻을 위해 내가 남을 배반할 수 있어도 남이 나를 배반하게, 원수가 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게 조조의 생각이었다. 그냥 돌아가면 부인의 죽음을 보고 원수가 돼 자신을 칠 것이라는 데 생각이 미치자 조조는 그 자리에서 친구마저 죽이고 다시 길을 떠났다. 그야말로 흑심의 대표 격이다. 하지만 큰 뜻을 이루기 위한 흑심은 세상을 바꾼다. 체면을 버리거나 작은 희생을 가슴 아파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유비와 조조의 이야기는 후안과 흑심이 마음의 창과 방패가 된다는 걸 일러줬다. 

책을 읽고 나니 IMF라는 큰 소용돌이 앞에선 전 직원이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사업을 정리하고 맞지 않는 인원을 정리하는 것은 큰 배가 풍랑을 만나 짐을 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 죽느냐, 남은 사람이라도 사느냐의 갈림길이었다. 그 순간 후안흑심이 맞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대신 구조조정 당사자들이 새로운 활로를 찾아가는 데 도움 되는 일을 적극적으로 전개했다. GE의 잭 웰치 전 회장이 늘 하는 말 중 하나가 있다. “조직에 A급 인재가 20% 있고, 나머지 80%가 있다. 그중에서도 맨 마지막 10%는 마이너스가 되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새로운 기회를 찾아 떠나갈 수 있도록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 

잭 웰치 회장은 “사람을 내모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면 “적재적소에서 자기의 잠재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조직과 자신의 삶 모두가 불행해지는 사람들이 있다. 이때 조직의 장은 이들을 안고 가는 게 아니라 새로운 일을 찾아가도록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대답하곤 했다. 그는 “대신 모든 GE 사람들을 변화와 혁신, 교육을 통해 몸값, 즉 가치를 올려줘야 한다”고 역설했다. 실제로 GE에서 퇴출된 대부분은 다른 회사에 가서 승진하고 월급도 더 받는 경우가 많다. 직원 개개인의 가치를 높이도록 끌어주고 교육시켜 어디에 가든 GE 출신이기에 몇 배 더 뛰어난 인재 소리를 듣게 만드는 것이다. 

사람은 그렇게 써야 한다. GE는 구조조정 스트레스가 거의 없는 회사로 유명했다. 정성 들여 GE 안에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찾아보고, 그래도 안 되면 적극적으로 외부에서 기회를 찾을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시스템이다. 어느 자리든 한 번 들어가면 마냥 좋은 게 아니다.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을 그냥 놔두는 것은 오히려 죄악이다. 삼성SDI도 사원들 중 장기근속해 정년이 다 된 사람들을 위해 ‘희망퇴직’을 받고, 그들을 위해 창업지원센터를 만드는 등 퇴직자를 위한 프로그램에 힘썼다. 

정리 장진원 기자 jjw@hankyung.com

손욱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교수(전 삼성종합기술원장·농심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