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革新

[손욱의 혁신 경영 이야기] 펄떡이는 물고기 같은 조직 문화를 만들어라

프로처럼 2012. 3. 5. 17:09

사람이 곧 혁신이다 39


함께 연구하며 시너지를 내려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이 열린 마음이다. 다른 이의 주장이나 기술을 받아들이는 것은 물론 자기 것을 열어서 보여주고 함께하는 소통과 통합의 리더십 그리고 조직 문화가 굉장히 중요하다. 이런 문화가 없는 삼성종합기술원을 어떻게 이끌고 나갈 것인지가 기술원 부임 후 가장 큰 고민거리였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바로 ‘펄떡이는 물고기’론이다. 미국 시애틀의 조그만 어시장에 자리 잡은 생선 가게의 얘기다.

이 생선 가게는 일본인 2세가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아 운영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들, 즉 2세 경영자가 부임한 이후 리더십 문제가 불거지며 침체되기만 했다. 아버지 대부터 일했던 좋은 직원들이 떠나기 시작하자 문제는 더 심각해졌다. 가게는 점점 몰락의 길로 내려가고 사장은 사장대로 불안정한 상태에서 뭔가를 자꾸 강요하게만 됐다. 종업원들의 반발과 저항은 당연했다.

어느 날 이를 지켜본 사장의 누이가 “좋은 컨설턴트를 소개해 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잠재 역량을 발휘하게 하고 신바람 나게 시너지를 내는 조직 문화 없이는 망할 수밖에 없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사장이 시키는 대로 하라. 왜 하지 않느냐’고 다그치기만 할 것이 아니라 모두의 뜻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충고했다. 이야기를 들은 사장도 이를 받아들였다.

사장은 모든 직원을 한자리에 모은 후 저녁을 함께하면서 “도대체 어떤 가게가 돼야 신바람이 나겠느나”며 직원들의 의견을 들었다. 처음으로 직원들과 함께 상의하고 서로 의견을 내는 자리가 만들어진 것이다. 저녁밥을 먹는 가운데 수많은 얘기가 나왔다. 그중 하나가 “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생선 가게가 되자”는 아이디어였다.



가장 유명한 생선 가게 만들기

공감했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구체적인 액션이 이어져야 했다. 이것 역시 직원들과 함께 상의했다. 결론은 ‘직원들 각자가 생각한 가장 유명한 생선 가게가 되기 위한 방법을 실천하자’는 것이었다. 처음 시작된 건 손님에게 ‘아주 큰소리로 인사하기’였다. 이어 팔린 고기를 앞에서 뒤로 던지며 “○○에서 ○○로 대구 한 마리 갑니다. 오징어 다섯 마리 갑니다”라고 큰소리로 말했다. 우리말로 하면 ‘평양에서 대구 갑니다’하는 식이다.

큰소리로 웃으며 일하자 일 자체가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예전 같으면 그저 일에 불과했던 생선 주고받기가 이후로는 마치 캐치볼을 하듯이 재미있어졌다. 공놀이 하듯 생선을 종이봉투에 담고 춤추듯, 놀이하듯 즐겁게 일하는 생선 가게로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가게 앞에 구경꾼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당연히 장사가 잘됐다. 엄마를 따라온 아이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봉투에 예쁜 생선도 나눠주고 맛있는 간식도 주었다. 아이들이 좋아하니 엄마도 가게를 찾는 횟수가 늘게 됐다. 그렇게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내며 즐거운 일터를 만들어 나갔다. 결과는 어땠을까. 직원 전부가 주인이 되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비린내 가득하고 짜증만 나는 일이 어느새 세상 무엇보다 즐겁고 재미있는 일로 바뀌게 된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전화 한 통이 가게로 걸려왔다. 시애틀에 살던 어린아이가 미네소타로 이사해 큰 병원에 입원했는데, 아이가 “생선 가게 아저씨들이 보고 싶다”고 조른다는 사연이었다. 어머니의 전화를 받은 직원들이 위문 공연을 제안했다. 값비싼 항공료는 사장이 내줬다. 생선 대신 물고기 인형을 준비한 직원들은 미네소타의 병원으로 날아가 가게 풍경을 그대로 재연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지역 방송국과 신문사가 찾아와 취재했고 결국 전국 방송으로까지 확대됐다. 시애틀의 재미있는 생선 가게가 하루아침에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생선 가게가 된 것이다.

삼성종합기술원은 삼성그룹 전체 연구·개발의 플랫폼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사진은 2003년 중국과학원과 포괄적 연구 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있는 필자의 모습.


기술원 사람들의 변화

다시 기술원 얘기로 돌아와 보자. 연구원들은 자신만의 연구에 깊이 빠져 있는 경우가 많다. 다른 기술에 별 관심이 없고 즐겁게 일한다는 개념도 부족하다. 이를 바꾸기 위해 ‘펄떡이는 물고기’ 책을 사서 읽게 하고 토론도 가졌다. 그러자 책을 읽고 감명 받은 ‘청년중역회’ 각 위원들이 해외 연수 계획을 짜 왔다. “시애틀에 들렀다가 오겠다”는 것이었다. 책을 읽고 토론만 하게 내버려뒀더니 직원들 스스로 변화를 결정하기에 이른 것이다.

청년중역회는 각 조직의 대표자로 이뤄져 있다. 이들 위원들이 자신이 속한 조직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이것 역시 자발적인 변화였다. 그중 제일 먼저 변한 곳이 ‘분석센터(AE)’다. 분석센터는 시료를 받아 성분을 분석해 결과를 통보해 주는 게 업무다. 그러다 보니 ‘남의 것만 처리해 주는 하청 업체’라는 인식이 다분했다. 스스로 목표를 세워 연구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가치가 떨어지고 동기부여도 힘든 대표적인 부서였다.

그런데 이들이 펄떡이는 물고기 운동을 하면서 바뀌기 시작했다. “노벨상 수상자를 보니 분석실 출신이 많더라. 단순한 분석이라고 여기면 재미없지만 다양한 연구를 가능하게 하는 과제를 갖고 오니 얼마나 즐거운 일이겠나. 연구한다는 마인드로 깊이 있게 접근하자.” 이런 정신으로 연구에 임하니 분석 성과가 좋아지는 것은 물론이고 프로세스도 개선됐다. 협력사와의 관계도 좋아지고 점점 신바람 나는 조직으로 변해갔다. 연구원들 스스로 ‘대한민국의 노벨상은 여기서 나온다’는 표어까지 써 붙여 놓을 정도였다.

통계를 내보니 물고기 운동 전에는 분석 의뢰를 받아 결과가 나오기까지 평균 한 달이 걸렸다. 그런데 운동 후에는 채 1년이 안 돼 불과 3일로 줄었다. 관계사가 좋아하는 건 당연했다. 관계사마다 서로 더 좋은 설비를 분석센터에서 살 수 있도록 도와주기까지 했다. 일도 3배까지 늘고 관계사에서 칭찬이 자자해졌다.

분석센터의 변화는 다른 부서로까지 이어졌다. 슈퍼컴퓨터를 운용하는 CSE(Computer Simulation Engineering)센터였다. 센터는 5개 그룹, 50명의 전문가로 이뤄져 있었다. 하지만 한국 최고의 슈퍼컴퓨터를 보유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가동률과 성과가 점점 떨어지기만 했다. 연구 성과가 수준에 못 미치니 관계사도 외면하기 일쑤였다. 왜 그랬을까.

문제를 받으면 5개 팀이 힘을 모아야 하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한 팀에서만 해결해 제대로 된 답이 아닌 것을 내놓았던 것이다. 자연히 결과에 대한 불평이 쏟아졌고 안에 있는 사람들끼리도 서로 비난하기에 바빴다.

급기야 젊은 연구원들이 모여 “우리도 바꿔보자”고 나섰다. 기술 융합을 위해 자리부터 바꿨다. 한 팀에서 한 명씩 뽑아 5개 팀을 새로 만든 것이다. 이들이 매일 점심도 같이 먹고 회식도 같이하고, 심지어 영화도 같이 봤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과제가 주어지면 5명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제시했다. 비로소 정답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불안한 마음에 과제를 의뢰했던 관계사는 기가 막힌 답을 보며 점점 의뢰 일감을 늘렸다. 그러자 얼마 되지 않아 컴퓨터 가동률이 100%에 이르렀고 설비를 늘려달라는 말까지 나왔다. 업무량도 3배까지 늘어났다. 연구 인력이 꽉 차 관계사 사람들까지 파견을 나올 정도가 됐다. 어둡고 침울하기만 했던 CSE센터는 항상 싱글벙글한 사람들로 북적이는 공간으로 변화했다.

자신의 일을 즐기는 문화, 이것이 바로 펄떡이는 물고기 이론이다. 조직 문화가 변하니 기술원의 성과가 높아진 것은 당연했다. 한국인은 역량이 뛰어나고 머리도 좋아 자발적으로 움직이게 해야 한다. 그런데 아쉽게도 아직은 조직 문화와 리더십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경영자들이 많지 않다.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중견기업이 대기업으로 커가는 결정적 요소가 바로 조직 문화인데 말이다.

정리 장진원 기자 jjw@hankyung.com


손욱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교수(전 삼성종합기술원장·농심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