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未來2014. 1. 4. 11:00

중국 저술가 리쭝우(李宗吾·1879~1944)는 사람의 표정과 심성을 분석해 후흑학(厚黑學)이란 책을 썼습니다. 후흑은 면후심흑(面厚心黑)의 줄임말입니다. '낯가죽이 두껍고, 마음이 음흉하다'는 뜻이지요. 후흑의 반대는 박백(薄白)입니다. '감정 변화가 표정에 드러나고, 마음이 순박함'을 이릅니다. 리쭝우는 낯 두께의 후박(厚薄)과 마음의 흑백(黑白) 조합에 따라 사람을 4개 유형으로 분류했습니다.

최근 출간된 '초한지 후흑학'(신동준 지음·을유문화사)은 초한지(楚漢志)에 나오는 유방·항우·한신·범증을 예로 들어 후흑박백 처세의 성패를 설명합니다. 초(楚)의 항우는 '박백'형 인간입니다. 명문가 출신 엘리트로 자존심이 강해 포용력을 발휘하지 못했고, 마음 또한 단순해 유방의 계략에 말려들었다는 진단입니다.

'초한지 후흑학'에 언급된 표정과 성격.

한신은 불량배의 가랑이 밑을 기어서 통과하고도 모욕을 잘 견뎠으니 낯이 두꺼웠지요. 하지만 마음이 깨끗해 유방에 대한 신의를 버리지 못했습니다. '후백'입니다. 한신은 제나라 왕에 오른 뒤 "천하를 초·한·제 삼국으로 정립(鼎立)하자"는 측근의 조언을 물리치며 유방과의 의리를 지켰지만 훗날 유방에게 목숨을 잃습니다.


항우를 보좌한 범증은 낯이 얇고 마음이 음흉한 '박흑'입니다. 갖은 책략으로 유방을 궁지에 몰아넣을 수 있었으나 모욕을 참지 못했습니다. 범증은 유방의 꾐에 빠진 항우가 자신을 의심하자 버럭 화를 내며 주군 곁을 떠났습니다.

책은 유방이 최후의 승자가 된 비결로 '후흑'을 꼽습니다. "군신과 부자, 형제, 부부, 벗의 오륜은 물론 예의염치를 깨끗이 버렸기에 군웅을 평정하고 천하를 통일할 수 있었다"고 분석합니다.

여러분은 어디에 해당하십니까. 저는 표정에 좋고 싫음을 숨기지 못하는 편입니다. 새해 첫날 책을 읽으며 그런 저 자신을 돌아봤습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도 듭니다. 후흑만 판치는 세상은 얼마나 살기 피곤할까. 회사가 후흑을 내세워 기업 공개를 피하면 투자자 보호는 어찌 되는가. 국가권력의 획득과 유지를 투명한 민주 절차 대신 온갖 모략에 기대야 한다면 또 어떻게 될까. 비록 승리하더라도 그렇게 되기까지 개인·기업·국가의 역량 낭비가 엄청날 것입니다. 그러니 '박백'의 솔직함도 가벼이 버릴 수 없습니다. 어느 책에나 해당하겠지만 후흑의 가치에도 취사선택하는 비판적 독서가 필요해 보입니다.

[출처] 프리미엄조선 김태운의 북&토크

Posted by 프로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