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方法2011. 6. 16. 13:31

매경이코노미 | 입력 2011.02.23 04:05

 

한국 경영학의 대가이자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섭렵한 윤석철 한양대 석좌교수(서울대 명예교수, 71)가 4번째 10년 주기 작품을 펴냈다. 저자는 이제 10년마다 책을 내겠다는 약속마저 하기 어렵게 됐다며 "약속은 인간을 구속하지만, 약속마저 할 수 없을 때 삶은 슬퍼진다"는 말로 출간 소회를 대신했다.

↑ 윤석철 지음/ 위즈덤하우스/ 1만4000원


저자가 인생의 말년에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복잡함을 떠나 간결함을 추구하라'다. 세상이 복잡해지면서 욕망과 가치관이 복잡해졌고, 의사결정의 기준도 모호해졌다. 하지만 저자는 '수단매체'와 '목적함수'라는 단 2개의 개념으로 세상을 분석하고, 인간 삶에 필요한 모든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목적함수는 말 그대로 삶의 목적이고, 수단매체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다. 하지만 문제는 어떤 목적을 설정하고, 어떻게 수단을 동원하느냐다.

저자는 목적을 설정할 때 이익을 최대화하려고 하면 사회는 물론 자신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사람은 장기적인 판단을 하기 어렵고 단기적으로 이익을 최대화하는 판단이라도 그 결정이 나중에 손해가 되는 것을 모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너 죽고 나 살기' 식의 생존경쟁은 인간의 아름다움을 잃게 하고, 사회적인 부조리를 낳는다. '머큐리'라는 자동차 모델을 생산하던 기업이 수은의 위험성을 알리는 프로그램을 제작하고도 방영하지 못한 것은 이익 최대화의 목적함수가 만들어낸 부조리다.

그렇다면 어떻게 목적함수를 정해야 할까. 저자는 '너 살고, 나 살기' 모델로 생존부등식을 제안한다. 생존부등식은 상품의 가치(V)가 가격(P)보다 크고, 가격이 비용(C)보다 크다는 개념이다. 기업은 고객에게 V-P만큼 주고, 그 반대급부로 P-C만큼 받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주고받기'다. 이 생존방정식은 기업과 소비자뿐 아니라 사회 모든 주체에게도 적용된다. 목적을 주고받기로 정해서 어려운 문제를 쉽게 해결한 사례도 있다. 20세기 초 여성의 참정권을 얻어냈던 팽크허스트 여사가 대표적이다. 이 여사는 여성의 참정권을 얻기 위해 줄기차게 시위를 주도하며 13번이나 투옥당했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전장에 나간 남성들을 돕자며 여성들을 방직공장으로 이끌었고, 이를 고맙게 여긴 영국 정부는 1918년 여성의 참정권을 허용했다.

목적함수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매체를 정교화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인간은 도구로 인해 만물의 영장이 됐지만, 한 차원 높은 수준의 수단매체를 지니기 위해선 열정, 인내심, 자연탐구 정신 등이 중요하다.

결국 '주고받음'의 목적함수를 만족시키기 위한 수단매체로 저자가 제시하는 것은 공감능력(감수성), 상상력, 실험정신(탐색시행)이다. 저자는 최근 황혼이혼이 많아진 것도 남편의 부족한 공감능력으로 평생 동안 참아온 부인이 한풀이로 이혼을 결행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상상력은 천부적으로 얻는 특별한 능력이 아니라, 확고한 목표의식을 갖고 달성하기 위해 열정을 갖고 몰두하는 사람이 발휘할 수 있다. 실험정신은 상상력을 현실화하는 수단이다.

가치 있는 목적함수는 부단한 자아성찰을 통해 축적된 가치관의 결정이다. 저자는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목적함수를 설정하기 위해 기업의 의사결정에 대해 고민했고, 대학 물리학과를 졸업한 후 경영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이 책은 새로운 개념들이 제시되고, 수학적인 도구와 자연과학의 사례가 등장해 어렵고 지루할 거란 인상을 주기 쉽다. 하지만 자신의 인생사와 풍부한 사례를 접목해 이야기를 쉽게 풀어가고 있고, 70년 평생 동안 갈고 닦은 삶의 통찰이 책 한 장 한 장에 묻어난다.

[윤형중 기자 hjyoo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594호(11.2.23일자) 기사입니다]
Posted by 프로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