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未來2011. 6. 24. 11:22
[중앙일보] 입력 2011.06.24 01:02 / 수정 2011.06.24 09:02

병원엔 이런 전문직도 메디컬 일러스트레이터, 의학 물리학자, 윤리학자 …


   메디컬 일러스트레이터 김보나씨가 자신이 그린 심장 단면도를 담은 아이패드를 들고 있다. 이 그림은 의대생 교육 자료에 삽화로 들어갈 예정이다. [권병준 기자]
일러스트레이터·무용수·물리학자·윤리학자…. 병원과 전혀 관계가 없을 것 같은 이들이 병원에서 일한다. 환자들의 서비스 기대 수준이 올라가면서 치료 기법이 다양해지고 첨단장비가 늘면서 이런 이색 직업군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이런 사람들의 재능이 환자 진료에 활용되면서 서비스 만족도가 올라간다.

올해 미국 존스홉킨스의대 대학원을 졸업한 김보나(29)씨. 그녀의 직업은 프리랜서 메디컬 일러스트레이터다. 환자나 의사가 이해하기 쉽도록 수술 방법이나 치료법, 질병으로 인한 신체 변화 등을 그림으로 그린다. 예를 들어 치료를 위해 절개한 부위를 어떤 방식으로 봉합하는지 실의 움직임을 하나하나 묘사한다. 그림이 워낙 정교하다 보니 실물 사진보다 더 낫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녀의 작품은 의대생을 위한 전문서적에서부터 환자용 가이드북까지 다양하게 들어간다.


   김보나씨가 췌장암세포가 번지는 과정을 그린 그림. 위는 암세포(왼쪽 가는 원 모양)가 혈관(오른쪽 굵은 원 모양)으로 접근하는 모습, 아래는 암세포(오른쪽 반원 모양)가 신경 주변을 잠식한 모양. [김보나씨 제공]
 김씨는 삼성서울병원 암환자 교육 교재의 삽화를 그렸다. 암세포가 자라면서 적혈구나 DNA 구조가 달라지는 과정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삼성서울병원 암교육센터 조주희 센터장은 “정교한 그림으로 질병을 나타내니까 환자들이 이해하기가 훨씬 쉬웠다. 반응이 굉장히 좋았다”고 말했다.

 그림으로 나타내려면 의사 못지않게 인체를 훤히 알아야 한다. 2년 동안 대학원에서 8구의 시체를 해부했다. 한 번은 일주일간 시체와 24시간 함께하며 구석구석을 살폈다. 수술실에 들어가서 스케치하거나 사진을 찍은 경우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이런 노력 덕분에 김씨는 미국 메디컬 일러스트레이션협회가 선정한 ‘올해의 최우수상(학생부문)’을 이달 말 받는다. 미국에서는 메디컬 일러스트레이션 전공자에게 해부를 허용하고 있다.

 김씨는 요즘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고 있다. 아이패드용 ‘췌장암 진단 훈련 애플리케이션’이다. 1년여간 준비한 끝에 출시를 앞두고 있다. 갓 의사가 된 사람을 교육할 목적으로 만든 프로그램이다. 여기에는 현미경으로 본 췌장암 세포의 모습, 암세포 변화과정 등을 담았다. 김씨는 서울대 간호학과를 졸업하고 간호사 생활을 하다 지인의 소개로 존스홉킨스의대 대학원 메디컬 일러스트레이션학과에 들어갔다. 미국에는 전문 메디컬 일러스트레이터가 1500명 정도 있다.

 국내에서 활동 중인 메디컬 일러스트레이터는 장동수(36) 작가가 있 다. 그는 주로 세브란스병원과 함께 일한다. 홍익대 대학원에서 조소를 전공했고 2002년 이 길을 택했다. 정밀한 인체 해부 그림을 주로 그리다 요즘에는 거의 모든 의료 분야의 그림을 그린다. 의학논문에 들어가는 삽화가 대표적이다.

 그 역시 환자가 어떻게 치료를 받는지 확인하기 위해 수술실에 들어가기도 하고, 세포의 변화를 그림에 담기 위해 현미경을 끼고 산다. 그는 “말로 설명하기 힘든 것을 그림으로 보여주면 명확해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무용에다 재활치료를 결합한 사람이 국립서울병원 재활치료과 최정아(36) 무용치료사다. 그녀는 대학에서 현대무용을 전공한 무용수였다. 우연히 고려대 안암병원에서 환자에게 재즈댄스를 가르치는 봉사를 하다가 8년 전 이 길을 걷게 됐다. 정신분열증 환자들은 몸을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이들을 걷게 하거나 춤 동작을 응용해 팔이나 다리를 움직이도록 유도한다. 그러면 환자들의 감정이 긍정적으로 변하게 된다. 최 치료사는 “재활프로그램에 참여한 환자가 옆사람의 등을 만진 뒤 ‘사람의 몸이 이렇게 따뜻한 줄 몰랐다’고 말한 적이 있다. 스스로를 주체로 인식한 것만으로도 큰 변화가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아산병원 방사선종양학과 조병철(45) 교수는 물리학자다. 그는 환자에게 맞는 맞춤형 방사선 치료기법을 만들어 낸다. 환자의 상태에 맞게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사선량·치료면적·각도 등을 산출한다. 의학물리학자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다. 연세대 물리학과를 나온 조 교수는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의학물리학을 3년 공부하고 지난해 3월 아산병원에 합류했다. 국내에 조 교수와 같은 의학물리학자가 150명가량 있다. 이 밖에 병원의 의료윤리를 다루는 윤리학자 , 사고 등으로 훼손된 시신을 원상태로 복원하는 사람 등도 이색 직업군에 속한다.
 
권병준 기자
Posted by 프로처럼